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2030년까지 10조 엔(약 90조 원) 이상의 공적 지원을 쏟아붓는 대규모 부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중 세계 3대 반도체 장비 기업인 도쿄 일렉트론(Tokyo Electron, TEL)에 대한 지원은 차세대 기술 공동 개발과 공급망 강화라는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1. R&D(연구개발)에 대한 집중 지원
일본 정부는 도쿄 일렉트론이 가진 세계적인 장비 기술력이 일본 반도체 부활의 뿌리라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여 설립한 LSTC에 도쿄 일렉트론이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2nm 이하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차세대 식각(Etching) 및 증착(Deposition)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EUV(극자외선) 공정용 감광액 도포 및 현상 장비(Coater/Developer) 시장에서 100%에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TEL의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 차세대 하이-NA EUV 대응 장비 연구에 정부 보조금이 직·간접적으로 지원되고 있다.
2. 라피더스(Rapidus) 프로젝트 통한 간접 수혜
일본의 반도체 국책 기업인 라피더스는 도쿄 일렉트론의 가장 큰 잠재 고객 중 하나다.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에 투입하는 약 120억 달러(약 16조 원) 이상의 지원금 중 상당 부분은 라피더스가 도쿄 일렉트론의 첨단 장비를 구매하는 비용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정부 지원을 받는 라피더스 홋카이도 공장에 TEL의 장비가 대거 공급되면서, TEL은 안정적인 국내 수요처를 확보함과 동시에 최신 공정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3. 공급망 회복 및 투자 세제 혜택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 장비 생산 시설을 신축하거나 확장할 때 투자액의 일부를 법인세에서 감면해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도쿄 일렉트론은 최근 이와테, 야마나시 등지에 대규모 생산 및 R&D 거점을 확충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을 받고 있다.
25~26 회계연도 기준, 도쿄 일렉트론의 재무제표에는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 수익(Subsidy Income)이 매년 수십 억 엔 단위로 계상되고 있으며, 이는 주로 국책 과제 수행에 따른 연구비 보전 성격이 강하다.
요약하면 일본 정부는 도쿄 일렉트론에 돈을 줄 테니 공장을 지어라는 방식보다는 차세대 기술을 개발할 테니 연구비를 지원하고, 정부가 만든 파운드리(라피더스)에서 우리 장비를 써서 세계 최고가 되어라는 식의 전략적 육성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럼 도쿄 일렉트론은 어떻게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슈퍼 을이자 세계적인 리더가 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첫 번째는 상사(Trading)에서 제조(Manufacturing)로의 성공적 변신이다.
도쿄 일렉트론의 출발은 1963년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를 일본에 수입해 파는 기술 상사였다.
외산 장비를 수입 수리하며 서구의 첨단 기술과 고객(반도체 제조사)의 요구사항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히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직접 제조에 뛰어들었다.
상사 DNA 덕분에 고객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포착하는 능력이 다른 제조사보다 탁월했다.
2. 특정 공정의 압도적 독점력 (코터/디벨로퍼)
TEL은 모든 장비를 다 잘하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이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에 화력을 집중했다.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기 전 감광액을 바르고 현상하는 코터 디벨로퍼 장비는 전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TEL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최첨단 공정인 EUV(극자외선) 노광 공정용 장비는 점유율이 사실상 100%에 가깝다.
네덜란드의 ASML이 노광기를 팔면, 그 옆에는 반드시 TEL의 장비가 세트로 들어가야 한다.
3. 4대 핵심 전공정을 모두 보유한 유일한 기업
반도체 핵심 전공정은 크게 노광(감광액 도포), 식각(깎기), 증착(쌓기), 세정(씻기)으로 나뉜다.
이 4가지 핵심 공정 장비를 모두 라인업으로 갖춘 회사는 도쿄 일렉트론이 유일하다.
여러 공정 장비를 한꺼번에 공급하다 보니, 장비 간의 연결성이나 전체 라인의 효율을 최적화하는 데 있어 경쟁사(AMAT, 램리서치 등)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4. 일본 특유의 현장 밀착형 서비스와 신뢰
반도체 장비는 한 번 고장 나면 시간당 수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TEL은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거점에 기술 지원 인력을 상주시키며, 고객사의 문제에 실시간으로 대응한다.
삼성전자, TSMC, 인텔 같은 거물급 고객사들과 차세대 공정을 설계 단계부터 함께 연구하며 장비를 맞춤형으로 제작한다.
이러한 깊은 신뢰 관계가 진입 장벽이 되어 후발 주자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도쿄 일렉트론은 우리가 아니면 반도체를 만들 수 없게 만드는 전략(Only One)과 고객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는 서비스(Customer First)를 결합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