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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Sep 01. 2022

내 마음의 쉼표

내 마음은 어디로 달려 나가는가?

아무도 못 말리는 방랑벽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우리나라의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무인도까지, 무인도가 어떤 모양인지, 그 섬에는 어떤 나무와 어떤 풀이, 그리고 어떤 생선들이 잘 잡히는 지도 잘 알았습니다. 이 세상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처음 집을 나선 것은 그가 아직 소년일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창문 너머를 지켜보다가

자리를 벅차고 벌떡 일어나 교문을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그 후로 남자는 집으로도 학교로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남자는 비슷한 신세의 방랑자들과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러저러한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처음 집을 떠났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자와 모닥불을 마주하고 앉아서

작은 솥에 술을 데워 먹던 한 방랑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자네는 창 문 밖에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길래 방랑을 하게 된 건가?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불렀어.

손수건을 흔들면서 나에게 어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지.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한 방랑자가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허, 집안에 뭔가 급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아이가 한창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엄마가 찾아와서 급하게 불렀다니 말이야.


남자가 말했습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게다가 우리 엄마는 내가 세 살 때 집을 나갔단 말일세


그럼, 그 사람은 누군가? 새어머니인가?

술을 마시던 방랑자가 남자의 내력이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습니다.


아니, 세 살 때 집을 나간 우리 엄마였어.

그리곤 내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소식이 없었지

그게 말이 되나? 세 살 때 집을 나간 자네 어머니는 어떻게 자네를 알아보며,

자네는 또 어떻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엄마를 알아보는가?


그러게 말일세.


남자는 방랑자들과 이 말 저 말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저 물끄러미 눈앞의 모닥불을 지켜보았지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남자가 한참만에 건너편에 앉은 방랑자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 사이 방랑자는 남자의 침묵에 잠깐 졸았는지,

애써 눈을 비비며 잠을 깨었습니다.


내가 교실을 뛰쳐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렸네.

엄마는 그 자리에 없었어.

허둥지둥 엄마를 찾다 보니, 엄마가 저만치 걸어가는 것이 보였네.

나는 다시 엄마를 쫓았지. 그래서 엄마를 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니었어. 그렇게 몇 번을 뛰다 보니 집에서 멀어졌네.

저녁이 다 되었는데 말일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네. 자꾸 어디론가 뛰어나가고 싶었네.


아주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아닐세.

길 위에서도 세월은 흐르지.  

내가 집을 떠나올 때는 봄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찬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었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겨울이 다가왔네.

그렇게 내가 모르는 봄과 여름과 가을, 겨울이 열 번도 넘게 흘렀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소년이었던 내가 어른이 되었네.

그리고 어느 가을날 찬바람이 등을 스치고 갈 때, 문득 집이 그리웠다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생각났네.

아버지와 형제들이 집에 있었지.

그래서 돌아갔다네.


그랬어? 잘 되었구먼.

남자의 주변에 있던 방랑자들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남자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남자가 여전히 자신들 사이에 섞여 있단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방랑자였습니다.

남자와 함께 하고 있는 방랑자 중 한 사람이 어째서 다시 집을 떠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집에 돌아가고 나서,

한 십 년간은 아무 일 없이 지냈다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나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네.

나도 다른 아버지처럼,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었지.

나는 행복했다네. 누가 봐도 행복했지.


그런데?

그리 행복했는데. 왜 집을 떠나왔는가?

컴컴한 얼굴들의 방랑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네.

불이 켜진 집안에서는 구수한 음식 냄새가 풍기고,

아내와 아이들이 재깔대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네.

글쎄, 뭐가 그리 재미있고 좋은지, 깔깔 웃음소리가 들리더군.


그러다 문이 열리고

어린 아들아이가 달려 나왔네.

아빠, 하고 나를 부르면서 내 품에 와서 안겼네.


그리고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네.

나도 누군가를 부르며 집 밖으로 달려 나가던 기억.

그날 밤, 나는 마음이 바빠졌네.

어서 짐을 싸서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네.

이미 내 눈에는 아내와 아이가 보이지 않았어.

 

남자가 방랑자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맥없이 웃었습니다.

남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지만, 그리 유쾌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쾌하다기보다는 일그러진 듯 보였습니다.

남자의 일그러진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허허허허 허...


알고 보니 말일세...


알고 보니?  맞은편에 앉았던 방랑자가 그다음이 궁금한 듯

남자에게 바싹 다가와 물었습니다.


남자의 웃음소리는 어느샌가 이내  울음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남자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렀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던 마음을 먹었던 것은 말이야.

내가 소년이 되어 학교를 뛰쳐나갈 때가 아니었다네.

이미, 그 보다 훨씬 옛날에 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네.

그날은 다름 아닌, 우리 엄마가 집을 나가던 날 밤이었다네.


그날부터 나는 지금까지 줄곧 엄마를 찾으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네.

그 마음이 나를, 내 몸을 어느 순간 이끌었네.

나는 온 세상을 방랑하고 다니면서도 어리석게 그 마음뿐이었지.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으러 다니는 마음.

그런데 말일세.

그 마음이 멈추지 않고, 내 인생을 허비했단 말일세.

나는 이제 초로의 노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를 찾아주지 않는 엄마도 노인이 되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텐데...

왜, 내 마음은 엄마를 찾아다니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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