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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Sep 02. 2022

내 마음의 쉼표

쉼표를 찍는다는 것은.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는 인터넷 게시판에 고단한 인생사를 넋두리 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아프고,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고, 본인은 정해진 직장 외에도 두 서너가지의 일을 더 하고 있지만, 사는 것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함께 그의 고단하고 힘든 상황을 함께 공감하는 따뜻한 글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댓글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였습니다. 


내려놓으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깃든 평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써 놓았습니다. 누가봐도 바람직한 이야기들이었지요. 댓글의 주인이 써 놓은, 그와 같은 마음가짐만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댓글 아래에 누군가 또 다른 댓글을 달아놓았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까요? 내려놓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지만, 뭔가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댓글의 주인을 빈정대거나 시비를 거는 줄 알았습니다. 인터넷 안에서, 에티켓에 어긋나는 활동을 하거나, 주제와 맞지 않으면, 성품이 격한 누군가는 꼭, 한마디 하게 되어 있거든요. 앞서와 같이 겉으로 들어나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 치열한 쪽지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 이전에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이 내려놓음이라면, 우리는 내려놓음에 대해 잘 몰랐지요. 저 또한 댓글의 대답이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대답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던 저는 처음 댓글을 달았던 아무개 거사의 블로그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뭔가, 내려놓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지요. 아마도 아무개 거사는 지금으로 치면 <나는 자연인이다> 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좋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몸에 좋은 약초나 술, 엑기스등을 산 속에서 만들어 파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 분이 써 놓은 그간의 병상일기나 인생역정을 살펴보니, 자연스레 약초나 대체의학에 속하는 여러가지 것들과 가까워 질 수 밖에 없어보였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이분이라면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개 거사님의 블로그 글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 분이 직접 저작한 글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되면 곰곰 되씹어 보며 읽을만큼 좋은 글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것들은 정말 세상살이에 도움이 될만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사실은 사나흘은 틈틈이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어쩌면 아무개 거사님도 기실 내려놓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였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이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걱정거리들을 바닥이나 안정적인 어딘가에 부려놓고 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이트 어디에도 어떻게 해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읽는 동안에 잠시, 우리가 들고 있는 삶의 무거운 짐을 잊을만한 이야기들만 잔뜩 있었을 뿐이죠. 저는 아무개 거사님이 차고차곡 쌓아놓은 글들을 읽으면서 어쩌면 잠시 잊는 것이 내려놓는 것과 마찬가지 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갈 길은 멀고, 해야할 일은 많은 데, 그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다고 눈 앞의 문제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듯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무거운 짐을 다시 떠 올리면 머리만 아플 뿐이었지요. 


그 후로 대략 십여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내려놓음에 대해 잘 모릅니다. 직장인에서 자영업자가 된 것 외에는 형편이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도리어 예전보다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 사장님이 된 후로는 휴일도 없이 명절도 없이 일년 내내 일을 하니까요. 벌어들이는 돈은 월급쟁이 시절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이것 저것 나가야 할 것들을 뺴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아직, 내려놓음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마음은 훨씬 편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나의 주어진 길을 가련다, 마음 먹지만, 실상 그게 또 쉽지는 않습니다. 매일 흔들리고, 매일 주저앉는 일이 많아도 마음은 그렇게 먹었습니다. 행여, 또 내가 하는 사업이 잘못되어 망하지나 않을까, 전전 긍긍하기도 하는데요.  뭐, 내 사업이 망하는거지, 제가 망하는 건 아니니까요.   


내려놓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요즈음에는 저녁한철이 조금 심심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조금은 휴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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