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말이 쉽지, 삶이 그리 쉬운가?
내려놓음의 의미는 아주 간단합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지요. 들고 있는 마음을 말 그대로 내려놓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려놓아도 우리의 마음은 늘 그자리이지요. 입으로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내려놓았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작 내가 하는 행동이나 그 결과를 보면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던 경우가 다반사지요. 그 이유를 들자면, 우리의 마음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모양이 있지 않아서 입니다. 오죽하면 불경에서 색깔도 소리도 냄새도 느낌도 없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안경과 같아서 그 마음을 한번 붙들면 내가 그 마음에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아 넘어가지요. 그리고 그 마음의 유혹이 강력하면 할수록, 내 안의 지혜가 부족하면 할 수록 우리는 마음에 붙들려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붙들고, 무엇이 붙들려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요.
마음에 붙들려 사는 인생은 누가 살아도 피곤하고 괴롭지요. 종일토록, 때로는 일평생동안 오직 그 마음에서 생겨나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그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생각이든. 괴롭고 힘든 생각이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저, 마음이 꾸는 꿈에 불과하니까요. 걱정은 걱정대로 우리를 심난하게 만듭니다. 걱정이 지나치면, 두려움이 생기고,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을 하지요. 지금은 즐겁고 달콤한 생각이라 해도, 이 또한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나중에는 또 그만큼의 아쉬움과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괴로워하지요. 그럴 바엔, 아예 처음부터 돌부처처럼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그 마음이란게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이 세상 살만하다 싶게 만드는 것 또한 마음이니까요. 우리 주위에서 무섭고 끔직한 일이 일어나는 데,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 세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끼칩니다.
우리가 내려놓음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성가신 마음을 한번에, 마치 귀찮은 쓰레기나 잡동사니를 치우려듯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려놓아야 할 마음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 대상이라면, 쓰리고 아프고, 기분 나쁜 감정이 감쪽 같이 사라져서 생각도 나지 않았으면 좋겠지요. 만약, 내가 내려놓아야 할 마음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라면 현실의 만족스럽지 못한 내 모습이 또 감쪽같이 사라지고, 어서 빨리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알고보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내려놓기 전까지' 우리 안에서 나온, 우리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음 또한 마치 큰 돌덩이를 쿵, 하고 땅바닥에 내팽개치듯이 내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따라서는 한 순간에 내려놓은 것 처럼 보일 수 있어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한 시간 사이에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을 준비를 합니다. 마음은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만큼 내려놓을 준비를 하지요. 어찌 보면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인 것일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 내려놓는 준비를 무의식적으로 해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알던, 모르던 슬프면 슬픔이 풀릴 때까지 실컷 울거나, 화가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이불자리를 박차고 또 박차며 분을 삭혔을지 모르지요. 그러다 보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풀리는 경험을 더러는 했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왜 그런 행동 들을 해왔는지를 잘 몰랐을 뿐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처럼, 우리는 내려놓음을 애초에 모르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려놓음은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다만, 누군가는 습관이나 지혜로 알든, 모르든 내려놓음이 쉬운 반면, 또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지요. 그저, 마음 스스로 내려놓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했을 뿐이지요.
우리는 뭔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화가나고 억울할 때.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와 대화를 하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할 떄가 있습니다. 이내, 내 마음에 치우쳐 있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우리의 마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이와 같습니다. 나의 마음을 충분히 제3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귀에 들려올 리는 없으니, 내 마음을 잘 살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잘 살피고 공감하려면 나 스스로 마음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현실에 두발을 디디고 선 채로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요.
그러려면, 나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나는 어쨰서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 마음이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나는 그 마음에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인가? 내 마음이 이야기하는 내 자신이 정말, 진실된 나의 모습인가? 행여 부풀려진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나의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제3자의 입장에서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매정하게 평가하거나 비판할 필요는 없습니다. 양심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성과 회심은 있을 수 있지만, 굳이 내가 나에게 맞지 않는 세상의 잣대를 가지고 스스로를 몰아 붙일 필요는 없지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친구를 떠 올려보세요. 그 친구도 나에게 평가나 비판을 하기 보다는 위로와 응원의 말을 더 많이 건넸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나만큼 나에게 좋은 친구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