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7. 2022

물장사로 배우는 세상

카페는 가족을 철들게 한다. 

젊은 시절, 저는 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내와 함께 사업을 하기도 하고 장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마담님은 저와 결혼하기 전, 처녀 시절부터 장사로 잔뼈가 굵었습니다. 앞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그 때문에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지요. 심지어는 집안에 피치 못할 위기가 닥쳤을 때도 산나물이며 약초를 받아다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건, 할머니 마담님을 닮아서인지 우리 딸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우 스물댓 살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등산로 근처에서 장사하던 외숙모의 식당을 물려받아서 근처 공장과 임시로 설치된 버스 차고의 기사들에게 새벽밥을 해주었지요. 딸사장은 그렇게 장사를 하여 번 돈으로 학교의 등록금이며 집안에 보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마담님과 딸사장은 공공연히 ‘장사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으스대기도 했지요. 어쩌면 ‘커/알/못’인 우리 식구들이 정말로 겁도 없이 카페를 차렸던, 그 무지한 용감함도 거기서 출발을 했지요.    

  

지금껏 우리가 장사를 하면서 사고팔던 물건들은 모두 정해진 가격과 수량을 셀 수 있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국밥집이나 중국집에서 팔던 자장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카페에서 파는 커피나 음료도 지금껏 우리가 팔아왔던 물건들처럼  사고팔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커피 한잔을 팔면 3,000원을 버는 것이고, 라떼 한잔을 팔면 4,500원을 버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집 커피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그만큼 많은 손님이 우리 가게를 찾을 테니 옛날처럼 돈을 버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 모두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물장사, 물장사…. 참으로 흔하게 듣고, 흔하게 말하던 그 물장사를 우리 가족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은 지금껏 우리 가족이 사고팔던 물건과 달리, 수량이나 가격을 정할 수 없습니다. 커피 한잔에 물을 얼마나 붓던, 오렌지 주스를 얼마나 따라서 팔던... 물론 커피를 담는 컵이 있고, 암묵적이나마 지역적으로 통용되는 가격이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은 그 수량이나 가격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알듯 말듯 참, 이상한 논리이지요? 저희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커피 한잔에 3,000원이라 정해놓고 오십 잔, 백 잔을 판다고 해도 정해진 잔수만큼의 이익이 생기지 않습니다. 


인제 와서 이야기지만, 우리 가족들은 커피 장사를 식당 장사와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 잔을 팔면 백 잔만큼의 이익이 생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셈이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의문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다른 사업을 할 때처럼 정확하게 셈이 맞는 이익을 남기려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알아낸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장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되려 큰 손해를 끼치게 되지요.     

 

물은 사람의 마음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마음도 물처럼 흐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냉랭하고 차가운 기운 앞에서는 물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단단하게 굳어버립니다. 그와 반대로 따뜻하고 다정한 기운 앞에서는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 관심 등을 타고 온 세상을 흐릅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물처럼 가뭄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홍수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리고 물장사, 아니 카페는 그 물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 잠시 쉬어가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은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또 누군가는 카페 주인의 친절함에 얼었던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카페에서 이웃을 만나 마음과 마음 주고받으며 서로의 슬픔, 기쁨 등을 나누어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카페 주인은 그 마음에 따라 한잔에 3,000원 하는 커피를 선뜻 대가 없이 건네기도 하고, 또 한잔을 반 잔씩 두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것은 손님도 마찬가지지요. 손님이 주문한 것은 비록 커피 한잔이지만, 그 대가로 내놓는 것은 꼭 3000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후쯤 들르는 아무개 여사가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대추차 값을 대신 내놓기도 하고, 바닐라라테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자제분이 한꺼번에 열 잔 값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가족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두세 잔 값을 더해서 장부에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손님이 드신 커피나 음료 말고 할머니 마담님과 할아버지 바리스타의 몫으로 세잔 넉 잔 값을 일부러 더 내놓고 가시는 예도 있지요. 그리고 그 마음들이 얼어붙지 않게, 그리고 언제나 우리 가게를 통해 머물다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카페 주인이지요. 우리 가게를 거친 마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과 이해를 싣고 빠르게, 그리고 넓게 퍼질수록 우리의 장사 또한 성황을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커피 장사만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이치와도 비슷합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그와 같은 세상의 이치를 배우기 위해 도道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일흔이 넘도록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이유는 저 또한 아주 빤하고 평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 너무나 당연하게 있는 것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당연함을 저는 할아버지카페의 바리스타가 되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전 23화 자영업자와 회사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