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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7. 2022

자영업자와 회사원

카페는 가족을 철들게 한다. 

이따금 딸사장의 친구들이 할아버지카페를 찾아옵니다. 회사에 다닐 때, 함께 일을 하던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지요.  딸사장을 찾아오는 친구들의 나이는 대부분 사십 대에서 오십 대 초반입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회사에서 느끼는 위태로움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자신이 회사의 구성원으로 온전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 자신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추월당하는 상황,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이나 업무역량, 정년과 퇴직 등등.  저 또한 딸사장이 회사를 그만 둘 무렵 그와 같은 고민을 수도 없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아무리 입바른말을 좋아하는 저라지만, 젊은 시절에 이미 겪어보았던 일들이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딸사장이 이 늙은 아버지와 엄마의 걱정거리이긴 해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족을 위해서 내려놓은 것도 많습니다.  ‘할아버지카페’를 개업하고 가게를 유지하느라,  그 아이 나름대로 마음먹고 계획했던 일들 대부분 제 뜻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많지요. 그래서 딸사장을 볼 때마다 아비로서 면목 없고 미안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딸사장을 찾아오는 그의 친구들이나 전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속 없는 아비 마음에는 ‘은근히’ 일찍 카페를 차리기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이 든 엄마와 아빠가 카페에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사고들, - 이를테면 캐러멜 마끼아또와 바닐라라떼를 헷갈린다던가, 잔돈 계산을 잘못한다던가 하는 일들- 말고는 적어도 지금의 우리 딸 사장은 앞서 직장 동료들이 겪는 생계의 위태로움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함, 불확실함 같은 문제들은 겪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잘했단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카페’ 차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는 딸사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동안 딸 사장은 우이동과 정반대 방향에서 카페에 찾아오는 친구를 일부러 수유역이나 노원역까지 차를 끌고 나가 마중을 하곤 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가게 일은 이 늙은이들에게 죄다 맡겨놓고 친구들에게 북한산 둘레길이며 도선사까지 관광 길잡이 노릇까지 했지요. 게다가 늦은 밤까지 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이따금 딸사장이 우리 내외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제 친구들에게 물색없이 가게 자랑 또한 어지간히 했나 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딸사장이 가게를 찾아오는 친구들을 썩 반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전화가 와도 일부러 없는 일을 만들어 약속을 만들지 않더군요. 워낙 호불호가 분명한 아이인 데다 부모가 보기에는 성격도 까칠하여, 속내를 알든 모르든, 딸아이가 친구들 만나는 일에 싫증이 났던가, 그게 아니더라도 대략은 딸사장의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언제인가 눈치를 봐서 그 내막을 물어보고,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알아보자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돌려야 할 일이면 싫은 소리를 해서라도 돌려야 하고, 고민이 있으면 또 나름대로 위로를 해줘야겠다고 싶었습니다. 딸아이의 나이는 수월치 않고 아무리 이 아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마다 영감이 하는 꼰대 같은 말이라도, 저와 집사람은 어디까지나 딸사장이 엄마이고 아빠니까요.      


그 후로,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교외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다, 딸아이로부터 입맛이 참 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딸아이가 꺼내놓은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딸아이의 친구들 대부분 미래의 걱정이나 두려움은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끝이 맨땅 않을 만큼 마음의 무게를 더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면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명함이 없는 걱정과 두려움을 한없이 들어줘야 하니 점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지루해지더랍니다. 게다가 우리 가족이 우이동 구석에 차린 콧구멍만 한 카페를 은근히, 때로는 대놓고 무시하는 친구들의 반응도 한몫을 했지요. 사실, 요즈음 젊은이들의 말로 ‘금수저’로 태어났거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를 한 사람도 그리 만만하지 않은 것이 카페 업입니다. 아니, 자영업 그 자체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카페도 엄연히 사업이기에 아무리 콧구멍만 한 가게의 인테리어나 설비라도 투자입니다. 때문에, 나중에 돌아올 투자금 회수나 손익분기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카페업을 시작할 때 사업이란 생각보다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자신의 환상이나 소망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바람이나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는 몹시 곤란해지는 경우를 저는 자주 보았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할아버지카페 가족도 카페를 시작할 당시, 아무런 준비나 계획 없이 급작스레 시작했지요. 그와 같은 우리 자신을 지금 돌아보면 눈앞이 아찔할 만큼 위험한 일을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고마운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느라 갑상선 수술 후유증을 앓던 우리 딸사장은 2년 가까이 잠은커녕 쉬지도 못하고, 온몸이 퉁퉁 부은 채로 가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의 그 모든 시간은 절박하다 못해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고 지금도 진저리를 치며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한 가게의 주인과 종업원이 가진 책임은 엄연히 그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회사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만 다하면 될 뿐이지만, 자영업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 모든 선택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할아버지카페뿐만 아니라, 이웃하는 다른 카페의 주인 또한 아무리 작은 가게의 주인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이미 자영업자로서 3, 4년을 지내온 딸사장의 입장에서는 친구들의 말이 퍽 허황하고 현실성 없이 들렸을 듯도 합니다. 사실, 딸과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 한다며 빈정대기는 했지만. 비록 억지 춘향이라도 그동안 딸사장이 쌓은 내공은 무시할 수 없지요. 친구나 동료들 몇몇은 딸사장과 같이 동네에 작은 카페나 작은 상점을 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이 하던 일에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꼭 사업을 시작하는데 운전실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딸아이가 만난 친구 중에 자신의 가게에서 필요한 제품이나 재료를 사 올 때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에는 저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습니다.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그리고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형태로든,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위험과 모험,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이 필요합니다. 그 책임은 그저 추측이나 예감이 아닌, 나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현실’에서 엄중한 결과로 일어납니다. 지금껏 산에서 도 공부를 하던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세상과 부딪혀 겨우 깨달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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