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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7. 2022

노인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가족, 손님 이야기

카페 뒷골목에 사시는 목사님 댁 노부부께서 산책을 마치고 가게에 들렀습니다. 목사님이 목회 일을 접으신 후, 두 분께서 나란히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두 어르신 또한 우리 집의 오래된 단골입니다. 저는 두 분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척척 알아서 커피를 대령합니다. 목사님은 시럽이 다섯 펌프 들어간 아메리카노 아이스, 사모님은 따뜻한 드립 커피 한 잔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모님이 목사님의 옷자락에 떨어진 물방울을 훔치며 뭘, 그리 흘리고 다니냐며 타박을 하셨고, 목사님은 사모님을 훔칫 한번 보시고는 말없이 아메리카노 아이스를 들이켜셨습니다. 내가 보기에 목사님의 흠칫한 눈빛은 -요즈음 아이들의 표현으로- 할/말/하/안 의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두 분 모두 올해로 여든일곱, 동갑이신데, 초등학교 때 만나셨다고 하니 햇수로 팔십 년을 해로하신 셈입니다.  


두 어르신과 저는 노닥노닥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받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이 줄 지는 않았는지. 작년부터 계속 좋지 않은 허릿병은 요즈음 들어 어떤지, 면목동에 허리를 잘 보는 병원이 있으니 가보는 것이 어떠한지. 두 어르신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면, 저 또한 일상의 안부를 묻습니다. 엊그제 자녀분들과 함께 다녀온 제주도 여행은 즐거웠는지. 무더운 날씨에 집안에만 계시는 것이 적적하고 답답하지는 않으신지, 그래서 요즈음은 무엇을 하고 하루를 보내시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입니다. 묻는 질문들도 늘 똑같지요. 그럼에도 그에 대한 대답은 날마다 달라집니다. 팔십 년을 해로하신 두 어르신 사이에도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 또 어떤 날은 쓸쓸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별 일도 없으면서 이상하리만치 분주합니다. 그것은  하루도 똑같이 지나는 날은 없지요. 우리가 아직 살아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목사님 부부는 여러 가지 오가던 말끝에, 얼마 전 전화통화를 하셨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지인은 좀 전까지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부인께서 병치레를 하게 되어하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달 만에 연락이 왔는데, 지인은 요즈음 들어 영 사는 낙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부인의 병시중을 드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병시중도 고단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서글픈지 모른다고요. 처음엔 그저, 홀가분하려니, 이제 나이를 생각하면 쉴 때도 되었지, 했다고 합니다. 한동안은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의 방문도 심심치 않게 있었고, -집에 병자가 있어도- 틈틈이 옛날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세상살이가 날마다 꽃놀이일 순 없지요. 차차 시간이 흐르고, 어르신의 아내 병시중이 당연해지면서 가족들의 발걸음도 뜸해졌을 것이고. 옛 친구들이 만날 때는 반가워도 매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요. 간병이라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와 일을 나누어하는데, 그다지 생각처럼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병자인 까닭에 곁에서 항상 지켜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침저녁으로 정해진 일들을 하고 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다 언제인가. 덩그마니 혼자 방 안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실 없이 허허 대는 자신을 보고 있노라니, 그렇게 딱할 수가 없더라네요.  아침이 되면 일을 하러 가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몹시도 그리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라고 합니다. 저와 같이 일흔을 훌쩍 넘긴 노인의 이야기임에도 어찌나 그 마음이 절절하고, 공감이 가던지요. 가게를 차리기 전의 제 생각이 났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울컥해지고, 코가 달아져서 혼이 났지 뭡니까. 


누군가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 집안도 어느 정도 살만하면서, 아침에 나가 일할 곳이 없어 서글펐단 이야기를 하면.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것은 꼭, 끼니가 간데없거나 금전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여러가지 애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보기에 마냥 좋아 보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날이 궂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아침에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요즈음처럼 허릿병이 도져서 복대까지 하고 가게를 나가야 할 때는 더욱 그렇지요. 아침잠이 유달리 많은 딸 사장이 이 고단한 아비의 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쿨쿨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울화가 치밀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선은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갈 때가 있다는 것, 아직은 나의 쓸모가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또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생겨납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크던 작던 자신의 삶에 맞도록 스스로를 벼리고, 쓸모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의 쓸모는 이해타산에 따른 산술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스스로 발견하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지요. 어떻게 보면 아무런 표식도 없는 세상의 커다란 자락에 나에게 맞는 자리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딸 사장이 만들어내는 라테 아트처럼 별 모양도 좋고, 하트 모양도 상관없지요. 나에게 알맞은 자리로 스스로를 가다듬어, 내가 세상의 일원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넓은 세상에도 내 뜻에 맞는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하고 자신감을 갖는 일 말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딱히 일을 하러 나갈 곳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돈이 많던, 적던, 내가 어떤 사람이든, 아니든. 나라는 한 존재가 딱 들어맞는 세상의 한 자락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댁의 지인께서 직장을 그만두고 느꼈던 그 쓸쓸함과 적적함도 그와 같은 것이지 않을까, 저는 마음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니, 스스로의 늙어가는 처지와 함께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느낌 또한 젊은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당신이 평생토록 벼리어 맞춰 놓은 나만의 자리가 어느 날 표시도 나지 않게 사라져서 더 이상은 돌아갈 자리가 없는 사람의 심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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