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소설책이지요. 소설이 나온 후, 오랜 세월 동안 영화나 연극, 뮤지컬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책과 영화로 단편적이나마 소설을 접했지요. 우리나라 말로 풀이하자면, ‘불쌍한 사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텔레비전 퀴즈 시간에 알게 된 내용인데, 개화 시대에는 ‘너, 참 불상타!’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조금 과장된 듯 느껴질지라도, 그 불쌍하고 안쓰러운 사람들 중에는 저 자신과 우리 아내, 그리고 우리 부부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장발장이 나오는 소설과 영화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카페를 하기 전의 일입니다. 종종 투덕거리긴 해도 우리 집 아이들은 우애가 꽤 좋은 편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며느리가 들어오고 나서는 셋이서 뭐가 그리 재미나고 신이 나는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주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 딸아이의 직장에서 가까운 홍대에서 아이들이 만났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요즘 아이들 인지라, 맛집으로 이름난 레스토랑과 디저트 가게를 잘도 갑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우리 두 늙은이의 몫도 종종 챙겨주지요.
제 이야기의 사건이 있던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녁 늦게 저희들이 먹은 것과 똑같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케이크가 든 상자가 어찌나 앙증맞은지, 겨우 제 주먹만 한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을 때, 우리 두 부부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생각하던 모양의 케이크가 아니었습니다. 한겨울에 천상 도화원에서 따 온 듯이 발그레하고 먹음직스러운 복숭아 모양이 케이크였으니까요. 그뿐 아닙니다. 또 다른 상자에는 정말 화분에서 키우는 선인장 같은 케이크도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한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생긴 그것만큼이나 맛도 좋았습니다. 어찌나 예쁘던지 우리 늙은이들이 한입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케이크가 사라지는 것이 몹시도 야속했습니다.
무탈할 줄 알았던 그날의 일은 머지않아 사달이 났습니다. 휴일이었던 다음날 점심 무렵에 말이지요. -아직 결혼 전이어서- 어제 집으로 돌아갔던 막내딸, 그러니까 며느리가 다시 우리 집에 왔을 때였습니다. 저희끼리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끝에 어제 먹은 케이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케이크 가격에 자칫 혀를 다 깨물 뻔했습니다. 세상에나. 고 조그맣고 주먹만 한 케이크의 가격이 하나에 9,000원이라니. 제 녀석들이 몫은 물론이고 우리 두 부부와 사돈댁 식구들이 먹은 것을 합치면 대략 십만 원 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의 저는 아직 화도 많을뿐더러 세상에 대한 분노로 성품도 퍽 거친 편이었습니다. 케이크 생각만 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 대로라면 뭔가 하나 제 손에 집혀서 와장창 소리를 냈을 텐데,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한참 동안 끓어오르는 분을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다음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카페를 차렸습니다.
사실, 카페를 차리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생각도 다를뿐더러,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생각에는 우리 카페에서 파는 커피며 음료가 용량은 야박할 만큼 적고 가격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를 마신다고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사람이 기운을 쓰는 것도 아니었지요. 게다가 우리 가게에서 멀지 않은 도선사의 자판기 커피는 겨우 300원이었지요. 제가 우리 아이들처럼 젊었다면 우리 카페에서 비싼 음료를 사 먹는 대신, 이웃 분식점에서 라면이나 김밥을 사 먹는 것이 낫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운동 삼아 도선사까지 올라가서 입가심으로 커피 한잔 마시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일 테지요. 그러고 보니, 요즈음 아이들은 학교서 배운 것만 많았지 우리가 젊을 때와 비교해 게으르기도 할뿐더러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멍청이들 같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누라인 할머니 마담님도 저와 생각이 같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훨씬 용감했지요. 아이들 모르게 손님들의 커피를 무한정 보충해주기도 하고, 가격이 비싼 음료를 깎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딸사장에게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요. 딸 사장은 마치 가게가 지금 당장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제 엄마를 몰아붙였습니다. 거기에 할머니 마담님도 지지 않고 맞섰습니다. 딸 사장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 전부를 싸잡아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염치없는 것들이라 나무랐습니다. 할머니 마담님이 딸 사장과 아이들에게 퍼붓는 말에는 뭔가, 지금껏 말하지 못하고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분노와 억울함이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 대부분이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별다른 여유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목숨을 걸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 때문에 밥을 먹고 일을 하는 것 외에 돈과 시간을 쓰는 그것은 천벌을 받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그건 형편이 좋아져서 살만해진 뒤에도 마찬가지지요. 일평생을 너무나 치열하게 산 나머지, 우리는 먹고사는 일 외에 돈을 쓰는 일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익숙하지 않습니다. 생계 이외의 것들 말이지요. 나를 위한 투자, 치장, 식도락이나 작은 사치 등등 그건 한가한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마찬가지지요. 그리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진정 끼니를 때울 수 없을 만큼 생활이 비난하지 않음에도 나를 위해 삼천 원짜리 커피 한잔을 내는 것이 몹시도 죄스럽고, 나와 같은 사람은 그리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지요. 쉽게 말하면 우리는 아직 스스로 여유를 주고 한가함을 누리는 카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집사람이 그간에 벌인 일에 대해 별문제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제 생각과 달리, 아이들 모두 할머니 마담님의 행동에 대해 심각한 문제라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기특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제 엄마를 책망하기 보다, 카페가 얼마나 즐겁고 재미난 곳인지를 알려주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아이들은 틈만 나면 우리 부부와 함께 서울 주변의 이름난 카페와 디저트 가게를 찾아다니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내외에게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거나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신상품을 시켜서 맛보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란 것을 알려주려 애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처럼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사람은 아이들의 그런 소풍이나 여행에 동참하기를 꺼렸습니다. 어쩌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커피나 그밖에 음료를 살 때도 언제 그랬냐 싶게 저 멀리 도망을 해서 숨어 있곤 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집사람, 그러니까 할머니 마담님이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세상,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여유로움이 마냥 두렵고 어색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그것이 꼭 부부는 일심동체여서만은 아닙니다. 아내의 모습 안에는 지금껏 마음의 여유 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제 모습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면 다행이겠습니다만, 저는 스스로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몰아치기까지 했습니다. 저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저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며 힘들게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카페를 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스스로의 시간에 여유를 갖고 즐기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가게 문을 열고 차 한잔 마시며, 지나가는 동네 친구를 부르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몹시 초조해하고 걱정이 얼굴에 한가득한 손님에게는 전과는 다른 의미의 무료 커피를 제공하며 상담을 자처하기도 하지요. 지금껏 생계를 위해, 생존을 위해, 자신을 엄혹하게 다루던 저 자신을 스스로 위로할 줄 아는 것을 넘어서 종종 이렇게 다른 이에게 손을 내미는 자신을 보면 조금은 흐뭇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