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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6. 2022

또 다른 할아버지카페를 꿈꾸는 어르신들에게

카페는 가족을 철들게 한다. 

할아버지카페가 잠시 한산한 시간. 말끔한 차림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저희 부부보다는 훨씬 아랫 연배로 보였습니다. 그래도 유치원에 다니는 손주가 있다니, 저희 부부와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커피 두 잔을 시켜 놓고 꽤 오랜 시간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산대에서 가까운 자리여서 잠시 살펴보니 시켜 놓은 커피는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집사람이 다가가서 식은 커피를 좀 데워 드릴까 묻습니다. 아니면 시럽이나 설탕을 넣어줄까도 묻습니다. 손님 중 부인되시는 양반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합니다. 아니요, 저흰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 자서요.    

  

어머, 그래요. 저도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자는데.      


호기심이 많은 우리 집사람은 옆자리의 빈 의자에 앉아서 두 부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사는 곳은 어딘지, 아이들은 결혼은 했는지, 우리 애들은 결혼들이 늦어서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라는 등. 제 아내의 물음에 두 부부는 마지못해 대답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편하고 재미있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뭔가 수상쩍은 의도를 가지고 온 느낌이 물씬 풍겨 납니다.

      

저는 내일모레쯤 쓸 원두를 로스팅하고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더치커피 원액을 내릴 준비를 합니다. 여태껏 별말이 없던 부부의 바깥양반이 호기심으로 두 눈을 반짝거립니다. 커피는 이렇게 하루에 몇 번 정도 로스팅을 하는지, 방금 앉혀 놓은 더치커피 원액은 또 어떻게 판매하는지. 조금 전까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치고는 참으로 집요하고 자세하게 저희 가게의 사정을 묻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제가 만드는 커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아이고, 딱하기도 하지….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어서 마누라에게 구박을 먹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마침내 부부의 안주인이 지금껏 제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종합하여 커피의 단가가 얼마쯤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도 빠지지 않습니다. 꼭, 이렇게 어렵게 로스팅을 할 필요가 있나요? 어르신 아시는 업체 중에 좋은 커피 원두를 제공할 수 있는 업체는 몇 군데가 있나요? 어디 그뿐인가요? 때로는 우리 가게의 하루 매상이 얼마인지, 임차료나 권리금이 얼마인지를 거침없이 묻기도 합니다.      


저는 그제야 두 사람의 정체를 알아챕니다. 사오 년 전쯤, 저와 가족들이 그러했듯이 노년에 할 수 있는 일거리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장삿거리를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먹은 마음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할아버지 바리스타인 나로서 앞서 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예전의 나 자신을 생각하며 부끄러워지는 것이지요. 아하, 이 양반 그런 제 속은 모르고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집니다. 가맹점 커피점보다 매출은 별로지요? 가게 차릴 때 얼마 정도 들었나요? 혹시 권리금 괜찮게 받으셔서 조금 더 사업을 확장해 볼 생각은 없으세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 싶지만, 저는 집사람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꾹 참습니다. 대신 제가 자식처럼 아끼는 비싼 원두 두세 개를 커피로 뽑아 두 부부 앞으로 가져갑니다. 집사람도 제 마음을 아는지, 얼마 전 딸사장이 시내서 사온 손가락만 한 디저트 몇 개를 챙겨 제 옆에 앉습니다.  저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그냥 한 모금 정도씩 맛만 보라고 두 부부에게 커피를 권합니다. 바깥분 되시는 분은 다행스럽게도 제가 들고 온 커피의 맛이 조금씩 다 다른 것을 아는 듯합니다. 하지만, 안사람 되시는 분은 여전히 쓰기만 하라며 집사람이 가져온 디저트에 손을 가져다 댑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할아버지카페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맨 처음 우리 가족이 카페를 시작할 때, 워낙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까닭에 우리 딸 사장은 지금도 종종 없는 시간을 빼서 커피 공부를 다닙니다. 그러다 말끝에 제 가족이 하는 카페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저와 같이 나이가 지긋하신 양반 중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밥 한 끼, 차 한 잔을 함께 하자며 자신들의 궁금한 것을 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페 하나 차리면 돈이 얼마나 들어? 1억? 2억은 가져야 그래도 인테리어가 한몫을 해야겠지? 또는 앞서와 동일한 이유로 학원 교재나 커피 관련 서적들을 전부 씹어서 먹어치울 듯 달달 외우는 양반도 있다고 합니다. 뭐, 굳이 묻지 않아도 이유야 간단합니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머리로 외울 심산인 것이지요.      


각자의 처한 상황이나 환경은 저마다 사연이 있겠습니다만. 저와 제 가족들이 종종 마딱드리는 앞서의 상황들에 대해서, 그간에 제 마음속에 쌓아놓았던 말씀 한마디를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의 어떤 커피도 맛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도 천천히 음미하며 ‘커피’라는 친구를 사귀어야, 진정한 제 모습을 보여주지요. 지금 여러분이 마시고 계신 커피의 맛은 어떤가요? 마냥 쓰기만 한가요? 아니면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만의 매력이 느껴지나요? 좋은 바리스타가 되려면 커피를 사랑해야 한답니다. 사랑하는 만큼 커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지요. 그리고 커피를 사랑하는 만큼 두려움이 없어진답니다. 이 세상 어디가 되었든 ‘카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깊은 산속의 작은 오두막도 카페가 될 수 있고, 출근길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근처의 노점부스는 말할 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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