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가족을 철들게 한다.
언젠가 우리 가족 모두 통영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아하, ‘우리 가족 모두’ 라고는 할 수 없겠군요. 막내딸, 그러니까 회사에 다니는 며느리는 휴가를 연이어 뺄 수 없었고, 할아버지 카페도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가게를 쉬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딸사장도 가게를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집사람은 근래 흔치 않은 호사를 누렸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는 늘 마누라 차지라지만, 늘 막내딸 차지인 탓에 손끝 한번 마음 놓고 만져보기도 어려운 아들 또한 오랜만에 우리 마나님 차지이지요. 게다가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챙 넓은 모자에 유럽여행 때 산 수제 핸드백을 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녀처럼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여행지 곳곳을 누볐습니다. 딱 한 가지 흠이라면, 그렇게 우아한 차림새로 누비고 다닌 곳이 다름 아닌 통영의 시장 골목이었다는 것이지요.
집사람은 멋있는 이탈리아제 핸드백에서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현금이 두툼하게 든 색동 누비 지갑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남자를 양팔에 끼고 말린 생선이며 반찬거리들을 사러 다녔습니다. 게다가 들르는 가게마다 그놈의 현금 흥정은 끝이 날 줄 몰랐습니다. 이따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잔 멸치 한 줌으로 실랑이를 하는 것 예사입니다. 뭐, 그다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리라 생각합니다. 공주처럼 차려입은 우리 마나님께서 시장 보따리를 들리 없었지요. 그 모든 것은 우리 마나님이 양쪽에 거느린 큰 돌쇠와 작은 돌쇠의 몫이지요. 저도 양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한 짐씩, 그리고 우리 아들아이도 말린 생선이 든 큰 상자 하나를 목에다 끼고 골목을 돌아다녀야 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아무리 트렁크에 집어넣었더라도 생선 보따리에서 올라오는 그 쿰쿰하고 비릿한 냄새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지요.
그래도 온 가족이 카페 일을 하다 보니, 어디를 가든 의무적으로 들러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숨은 커피 맛집이지요. 서울 근교라면 언제든 시간을 쪼개 갈 수 있지만, 통영이나 강릉, 부산처럼 거리가 먼 지역은 일부러 마음을 내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맛집 리스트를 모아놓았다가 그곳에 갈 일이 있으면 적어도 한 두 집은 꼭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간 곳은 통영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였습니다.
가족들은 늘 그렇듯 자신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하나 혹은 둘씩 시켰습니다. 아들과 저는 마일드한 풍미의 중남미 커피와 우리 가게에서도 판매하는 케냐 커피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 우아한 마나님은 예가체프 계열의 커피 하나와 치즈케이크를 시켰습니다. 잠시 후 가족들은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씩 머금었습니다. 아들과 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으나, 우리 할머니 마담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손짓해서 멀찍이 계산대에 서 있던 가게 주인을 불렀습니다. 우리 마나님은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가게 주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잠시 후에 또 다른 커피 한잔이 나왔습니다. 할머니 마담님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온 귀부인처럼 새로 가져온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 사이 카페 주인은 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서 있더군요. 마침내 아내가 흡족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제야 카페 주인은 긴장을 풀고 제자리로 돌아가더군요.
아들이 할머니 마담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 마담님은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정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주문한 커피는 예가체프였는데, 직원이 내온 커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커피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을 불러 주문 착오였는지를 묻고, 새로운 커피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제야 카페 주인이 왜 그토록 긴장해서 아내 옆을 지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흰머리가 절반인 할머니가 예가체프를 똑 떨어지게 구분해서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속이 뜨끔 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웃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앞에서 운전하던 아들아이도 킥킥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오전 무렵 어물전 골목을 돌며 장사꾼 아줌마처럼 목소리를 높여 실랑이하고 배송료 다툼을 하던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는 마누라가 맞는지 싶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람도 그런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고 무안했는지, 제 옆구리를 꼬집고 또 꼬집었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가난한 집의 팔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같은 또래의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 앞에서 궤짝을 괴어 놓고 사과를 팔았던 것이 아주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저를 만나서도 일평생 장사나 허드렛일을 하러 다녔지요. 그래서 아내는 그 상처와 자격지심을 극복하고자 중고등 학력 인정 자격을 취득하기도 하고,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았으나, 영 성에 차지 않을뿐더러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집사람은 유난히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가 할아버지 카페의 마담님이 되고, 어깨너머로나마 커피를 배우면서 용하게도 커피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커피나 카페의 정보를 읽거나 외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득하고 커피를 ‘이해’하며 마음속에 전에 없든 든든함이 생긴 듯했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이해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합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아내가 늘 갖고 싶어 했던 지성과 교양의 본질이기도 했지요. 물론, 저만의 개똥철학이긴 하지만요.
아마도 할머니 마담님은 카페를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을 많이 만났을 것입니다. 어쩌면 태어나서 낯모르는 사람들을 매일매일 그토록 친절하게 마주해 보기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집사람은 식당을 꽤 여러 번 열었습니다. 식당은 손님이 필요로 하는 음식만 제공하면 되지만, 카페에서는 손님이 주문하는 커피 한잔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따금, 모르는 손님의 사연도 알게 모르게 들어야 하고, 때로는 그리 가깝지도 않게 멀지도 않은 마음의 거리를 두고,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마음을 살피고 공감해야 하지요. 그리고 그와 같은 카페의 일상 속에서 손님들을 통해 저 자신을 비추어 보기도 하지요. 제 생각이긴 하지만, 전과 다른 할머니 마담님의 우아함은 바로 그와 같은 할아버지 카페의 시간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마누라 아니, 할머니 마담님이 잠시 머물렀던 카페에서 보여준 에티켓은 제가 봐도 참 훌륭하고 우아하게 여겨졌거든요. 우리 마누라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