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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5. 2022

우리 영감 철들었네

카페는 가족을 철들게 한다.

언젠가, 대기업의 임원으로 근무하던 사람이 정년퇴직 후, 호텔 레스토랑의 말단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된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와 관련한 대중매체의 기사나 프로그램을 접하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서 보통 사람들이 아주 하찮게 여길만한 직업을 선택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 또한 내심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와 같은 멋진 선택을 한번 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 해가 지나 할아버지 카페의 바리스타가 되었습니다. 대기업 임원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도인 생활을 하다가 카페 주인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마음속으로 바라던 기회가 저에게도 주어진 셈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처한 현실은 마음속의 기대와 아주 아주 달랐습니다. ‘온화하고 멋있는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아닌, 세상 둘도 없이 성품이 고약한 노인네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입니다.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저와 말다툼 한 번 안 하고 지나간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사소하게는 우리 가게 앞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들과 편의점의 쓰레기, 그저 말로 풀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주차문제, 주말마다 이웃 가게에서 세워 놓는 입간판을 두고 지겨울 만큼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제 생각은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어찌 그리 이기적이고 생각이 좁은지요. 주위 사람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행동들이 참으로 밉살맞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오래도록 우이동에 살았다지만, 그래도 동네에 새로 자리를 잡은 우리 식구들에게 텃세가 만만치 않았지요. 그러니 아무리 순한 사람이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시끄럽고 바람 잘 날 없기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집에서도 큰소리가 났습니다. 때로는 분을 참지 못한 제가 뎅겅 뎅겅 뭔가를 집어던지고 깨뜨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누라나 애들이나 하나같이 제가 하는 일마다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시비를 걸기 일쑤였습니다. 대추차나 생강차에 들어가는 고명을 손가락으로 집었다고 나무라지를 않나, 손님의 아메리카노의 양이 제각각이라고 또 지적하지 않나, 제가 실험 삼아 만든 커피 음료를 제 마음대로 손님에게 대접했다고 또 한소리를 하지 않나. 가게에 손님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망치질하거나 부산스레 다락을 오르내린다며 가족들 모두 성화를 하지 않나.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저 또한 가족들과 부대끼고 이웃들과 불편하게 지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오늘 하루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면, 꾀병이라도 부려서 이불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나의 하루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저는 가시밭길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소싯적 저는 아내와 함께 지방에서 몇몇 사업도 벌여보고 꽤 손님이 많이 드는 식당도 해보았습니다. 사업이나 식당은 한번 바쁘기 시작하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분주하기 그지없습니다. 손님은 손님대로 아우성이고, 또 직원은 직원대로 정신없이 마련입니다.


그러나 카페는 지금껏 제가 꾸려왔던 업종과는 아주 아주 달랐습니다. 시끄럽게 길 밖을 나다니며 호객을 할 필요도 없고, 거래처를 늘리려고 일부러 애를 쓰며 영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때때로 명절이나 기념일이 많은 시기에는 답례품이나 선물용 주문이 많아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하지만, 보통은 뭐랄까요? 밖에서 우리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을 기다릴 뿐입니다. 손님이 가게에 들려고 주인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쓰는 커피 품종이나 맛, 그리고 인기 메뉴 정도를 설명하는 것이 전부지요. 그밖에는 손님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즐기거나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러다 손님이 불편하게 여기거나 난처한 일이 생기면 성가시지 않은 한도 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카페 주인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이지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든 우리 안에는 나 자신과 주변의 일을 지켜보고 스스로의 삶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는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 안의 블랙박스처럼요. 누군가는 그와 같은 눈이 정말 있는가 싶게 둔감하고, 또 누군가는 그와 반대로 매우 예민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 뭐랄까요?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퍽 예민하고 까탈스럽지만, 저 자신을 지켜보는 일에서는 매우 둔하고 무신경한 편이었습니다.     


카페라는 업종은 다른 업종이나 사업들과 달리, 철저하게 손님이 우선인 업종입니다. 손님이 가게를 찾는 이유는 커피나 차를 즐기러 오는 것도 있지만, 혼자만의 또는 지인들과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와 같이 둔하고 무신경한 사람도 묵묵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가게를 찾은 손님을 지켜보는 일이 생활이 되더군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왜 그토록 제 주변이 시끄럽고 불편하며 적대적이었는지 말입니다. 그건 제가 소싯적 회사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과의 사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내가 하는 일이 옳았고, 저는 언제나 제 생각만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아온 시간, 내가 살아온 삶 속에는 타인의 시간이나 타인의 여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간을 멀리서, 여유를 갖고 지켜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가 이 모양이니, 제게 돌아오는 세상의 시선이나 대접도 결코 부드럽고 관대할 리 없었겠지요.


덕분에 앞서 이야기했던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호텔 급사가 되었던 그 양반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양반의 대단함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껏 나 자신과 함께 하는 주위를 침착하게 지켜보고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었지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요? 저는 요즈음 지금껏 불화하기만 했던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다지 큰 문제도 아닌 것으로 언성을 높이고 함부로 대했던 이웃 식당의 사장님과도 잘 지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런데, 그간의 패인 마음의 골이 깊었는지,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지만,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옛날에는 기겁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던 캣맘 여사님과도 잘 지냅니다. 되도록 제 마음대로가 아니라, 이웃들이 보이는 행동이나 사소한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지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요즈음은 집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이따금 우리 마나님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욱,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집사람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제 마음대로 고집을 부릴 때보다는 훨씬 낫지요. 그러고 보니 요즈음은 맨날 하는 일마다 통박을 주던 집사람이 엉덩이 툭툭 치며 칭찬을 할 때도 있습니다.


어이구, 우리 영감이 다 늙어서 철이 들었구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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