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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4. 2022

바리스타 VS 바리스타

또 하나의 가족, 손님 이야기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손님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눈에 띄게 유별난 티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무난한 옷차림과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참 이상하지요? 업자는 업자를 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경력의 차이가 있어, 저와 같은 초짜 바리스타가 견줄만한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저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바리스타 손님입니다.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들이야 알고 보면 여러 가지겠지요. 하지만, 제 경우에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 무심하게 보이는 행동들로 그들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보통 손님들에게도 바리스타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광경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함께 온 일행들과의 이야기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더 관심이 많지요. 그러나 이 특별한 손님들은 제가 손님의 주문을 받아 커피를 내리는 모든 과정을 이들은 퍽 세심하게 지켜봅니다. 그라인더에서 떨어지는 커피 가루의 굵기, 냄새, 드리퍼 위에 올려지는 거름종이, 포트의 물줄기가 드립 위로 떨어질 때, 얼굴을 스치고 가는 미묘한 표정 등등. 그리고 마침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난 다음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제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님은 그저, 음, 좋네요. 또는-우이동 촌구석의 이름 없는 영감이 낸 커피치고는-예상 밖의 맛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어우! 하고 감탄사 한마디를 벹을 뿐이지만, 그게그게그게... 보통 손님이 보여주시는 행동과 이 특별한 손님과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제 짐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손님에게 묻습니다. 커피 업에 종사하거나 바리스타를 하는 사람인지를요.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손님 모두가 바리스타라는 아닙니다. 요즈음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타입의 커피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대략 삼십년쯤 되었습니다. 유난히 성질 급한 우리 집 딸사장도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부터 방배동이다, 압구정이다. 돌아다니면서 차인표 오빠가 드라마에서 먹었다는 커피를 맛본 이야기를  조잘조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문에, 굳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본인의 타고난 소질이나 관심도에 따라서 바리스타 못지않은 미각과 지식을 자랑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특히나 이런 손님 앞에서 어설프게 커피에 대해서 아는 척을 했다가는…. 어이구, 생각만 해도 등에서 진땀이 다 나네요.


그리고 가끔은 우리가 흔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예도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이탈리아에서 온 바리스타가 저희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요. 그는 충격적으로 아메리카노에 설탕을 잔뜩 부어서 마셨습니다. 앞서 소개로 그가 바리스타인 것을 알고 있던 제가 적잖이 놀란 표정을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영어를 알아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도 저도 말이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니, 손짓·발짓 거기에 함께 온 한국인 직원의 통역까지 보태어 이야기를 나눴지요. 아무튼, 그가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어르신 커피는 훌륭합니다. 난, 커피를 좋아하지만, 꼭 쓴맛으로만 먹지 않아요. 이렇게 설탕을 넣어 먹을 때가 더 많아요,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꽤 여러 번 우리 집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갔지요. 이 사람, 요즈음은 뭘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리스타 손님이나, -바리스타만큼 커피의 지식이 깊은-‘덕후’ 손님이 가게를 방문하면, 내색하지는 않아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긴장이 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불시에 시험을 보는 학생이 되는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이 긴장감과 불편함이 지나고 나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저보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많은 탓에, 꼭 하나씩 얻어 가지는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이것저것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동안 영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문제를 찾아내서 해결할 때도 있고, 제가 커피 공부를 하며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겨놓았던 의문점을 풀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들을 통해서 지금보다 한층 나은 커피 실력이나 정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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