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부캐, 인생 카운슬러
또 하나의 가족, 손님 이야기
우리 가족이 아직, 카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입니다. 저는 수시로 서울 시내의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제 나이에 걸맞은 돈벌이 장소를 물색하고 다녔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리한 손바닥만 한 가게 하나를 얻어볼 생각을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열쇠집이나 구두 수선점이 자리하기에 딱 알맞은 콧구멍만 한 가게 자리 말입니다. 아마도 이쯤 하면 많은 분이 거기서 제가 뭘 할까 궁금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늙은이가 힘들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돋보기나 손지갑, 귀이개, 손톱깎이 같은 소소한 잡화를 판매할 수도 있고, 작은 문구점을 열 수도 있겠지요.
제 야심 찬 계획은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여 철학관을 하나 개업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의 운세를 점치고 이사나 개업에 좋은 택일도 해줄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젊은 친구들의 진로나 연애 상담도 잘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오가는 행인을 상대하다 보면, 우리 늙은 부부의 용돈 벌이 쯤은 수월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도인 생활하면서, 저는 도道 공부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함께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팔괘나 오행, 명리와 같은 동양철학 또한 마찬가지지요. 심지어 팔괘는 중국까지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울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대략 삼십 년 전쯤에 말이지요. 그리고 카페를 하기 전까지는 전문적으로 풍수지리를 배워서 자격증도 따두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직업과 상관없이 여러 방면에서 그와 같은 지식을 활용하며 살았습니다. 제 친구나 지인들에게 새로 태어나는 손자 손녀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결혼이나 이사 택일을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제가 가진 이와 같은 능력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친지들에게 베푸는 봉사나 취미라면 모를까, 돈을 받고 앞서 와 같은 일을 하는 그것에는 정색하며 반대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야심 찬 계획을 모두 접고, 가족들의 뜻에 따라 할아버지카페를 열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곡절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가게를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제가 풍수지리 지도사 자격증을 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지요. 한참, 엘로드라는 물건을 쓰는 데 재미가 붙어 있었습니다. 엘로드는 기억자 모양으로 된 얇은 쇠막대인데요. 수맥을 찾아내는 데 사용하는 휴대용 기구이지요. 저는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그 엘로드를 들고, 우리 카페가 있는 동네 주변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카페의 할아버지가 당신 카페만 장사를 잘되게 하려고 비방을 한다더라, 하고요. 물론, 동네 분들과의 오해는 그리 오래지 않아서 쉽게 풀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자식들이 얼마나 성화를 하던지요. 그 후로는 아예 동양철학과 관련한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 가족이 우이동에 자리를 잡은 지도 대략 삼십 년이 다 되었고, 그만큼 알고 지내는 사람도 많지요. 사실은, 커피나 카페 사업에 무지하면서도 겁 없이 카페를 개업한 것도 알고 보면 우리 가족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믿고 섣불리 ‘저지른’ 일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사주카페가 아닌 다음에야 일부러 내어놓고 광고를 할 리도 없건만, 저희 가게에 인생 상담을 위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겼습니다. 물론, 손님들도 제가 본격적으로 바리스타 일을 하게 된 후로 인생 상담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디서 ‘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가게에 오셔서는 꽤나 오랫동안 뜸을 들이십니다. 가게에 손님이 없고 한산할 때까지 커피를 두어 잔씩 이어마시며 기다리기도 하고, 가게 주변을 어슬렁대며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제게 오셔서 상담을 부탁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손주의 이름을 짓거나 새로운 사업 자리를 개업하는 등, 경사스러운 일을 상담하는 것은 모두에게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지요.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는 병이 있다거나, 송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거나 하는 문제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답답한 문제들에 대한 문제나 상담내용이 본인이 원하는 대로 나오면 금상첨화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불편하고 힘든 일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 때문에 좋은 일에 비해 그 과정이 더욱 길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때문에, 손님이 원하는 상담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저도 말씀을 드리기가 참, 죄송할뿐더러,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말을 더 많이 해줘야 합니다.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마음의 성의도 보여야 하지요.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요즈음 젊은 친구들은 제가 바리스타 일을 하는 것 외에 사주 상담을 하는 것을 두고 부 캐릭터라고 부르더군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유재석 씨가 가수 유산슬 활동을 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근래에 들어 사는 것이 점점 더 팍팍하고 어려워진 후로는 저의 부 캐릭터가 가게에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주를 보고 소정의 상담료를 받기는 합니다만.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은 손님의 사정에 따라서 스리슬쩍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차마 받기가 어려울 때도 많지요. 그냥, 제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신뢰성 있는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으로, 손님들은 마음에 위안 같은 것을 얻는 듯합니다.
할아버지카페의 커피가 맛있기는 하지만. 꼭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보다는 마음의 평온과 위안을 위해서 찾아오지요. 그게 우리에게 카페가 필요한 진짜 이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