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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8. 2022

카페CAFE의 시대는 정말 저물고 있는 걸까?

가게에 손님이 읎다. 정말 읎다. 어찌나 한산한지 거리에 개미 한마리... 라도 손님으로 오시면 벌떡 일어나 '어서옵쇼'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게에 손님이 없는 이유야 여러가지다. 그 이유를 꼽자면 되려 장사가 안되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다. 우선은 우리 가게가 북한산 등산로의 쇠락해가는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등산객들이 몰리는 주말 말고는,  손님이 뜸한 편이다. 


게다가 지금은 길고 긴 장마가 물러가고 여름 휴가가 한창 시작될 무렵이다. 하늘이 어찌나 밝고 쨍한지, 나 마저도 가게문을 닫고 놀러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지난주부터  초중고교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고 하던데, 어린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부모들, 그리고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청춘들 또한 이 좋은 시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가 한몫을 한다. 오늘은 2022년 7월 26일이다. 코로나가 대유행을 한 지도 3년차에 접어들었고,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다시 재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어제까지 집계된 확진자 수가 십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무능한 자영업자들이 너도 나도 애먼 코로나탓만 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실제로 겪어봐야만 그 맛을 안다. 한창 상승세를 타던 가게 매출이 하루아침에 반동강이 나고, 정부의 집합금지조치가 떨어진 후, 종일토록 아메리카노 열잔값도 안되는 매출을 손에 쥐어봐야, 어허!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구나, 를 알게 된다. 이를테면 인생의 쓴 맛이랄까? 참, 이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남동생이 한말이다. 여의도에서 카페를 하는 그 친구는 한때 잘 나가는 프리랜서였다. 돈도 꽤 잘 벌어서, 이따금 주위 사람들에게 눈치없이 속터지는 소리를 곧잘 하곤 했었다. 그의 업무는 대부분 해외에 나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렇다. 그런 그가 카페를 하게 된 것도 코로나 때문이었다. 요즈음의 그가 가장 무서워 하는 단어로는 여름 휴가, 집합금지, 코로나 재확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가 너무 많다. 우리 할아버지카페 말고도 이 작은 거리에만 카페가 6곳이나 된다. 그리고 등산로 입구의 지하철역 부근에는 대형프렌차이즈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업종의 점포가 치킨집이라고 하는데, 우리 가게가 있는 동네에는 고작 두군데 뿐이다. 카페가 치킨집 보다 세배나 더 많은 것이다. 그건 우리동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따금 시내에 볼 일이 있어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다 보면, -카페나 디저트 전문점으로 특화된 거리가 아님에도 -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카페, 그리고 카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점포를 발견하게 된다. 늘 손님이 넘쳐나는 프렌차이즈 점포들, 우리 할아버지카페와 같은 개인점포들, 테이크아웃만 전문으로 하는 점포들도 있고, 쥬스나 버블티와 같은 비카페인 음료를 파는 점포들, 디저트, 제과를 하는 점포들... 그렇다고 이들 모두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자영업이 어렵다지만, 카페만큼 쉽게 문을 닫고 쉽게 창업을 하는 업종도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 대략 일이년쯤 있었다 싶으면, 이유없이 여러날 가게에 불이 꺼져 있거나 새로운 간판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익히 잘 알려진 '빤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욱 심각한 이야기다. 우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카페업으로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아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가 퍽 우아하고 조용한 업종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도 그 사실을 안 건, 직접 카페업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앞서 말한 여러가지 이유도 한몫을 했지만,  할아버지카페는 처음부터 그리 바람직한 매출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우아하게 가게만 지키고 앉아서는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은은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가게에 애정이 깊은 단골 손님이라도 밥대신 커피로 끼니를 때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카페를 찾는 손님은 물론이고, 나 자신까지도.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가 아닌 이상 커피가 우리 생존에 최우선이 될 수는 없다. 알고보면 그게 카페업이 어려운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워서 잠도 자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지 않으면 그 다음이 없었다. 그래서 내 딴에는 퍽 부지런히 움직였다. 홍보용 스티커를 제작하고, 모바일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까지 개점했다. 보험사와 렌탈 회사의 직원을 섭외해서 판촉용 드립백을 자석 스티커와 함께 대략 천개정도 돌려봤다.  그래도 영,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커피가 맛있다고 먼 지역까지 소문은 났는데, 정작 찾아오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정신없는 물갈퀴질을 쉼없이 이어가며 겨우 가라앉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 무렵보다는 덜 겁쟁이가 되어있단 사실 정도다. 


기억 속의 어느한  때, 


참으로 징글징글 하게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긴장과 불안이 심해서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청할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그날은 그 수면제마저 영 신통치가 못했다. 내가 잠을 이루던, 이루지 못하던 나는 내일 아침 가게에 나가야 했고, 또 장사를 시작해야했다.  그래서 컴컴한 방 안에서 애먼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커피가 유럽의 대중들에게 처음 소개되었던 대항해시대가 떠 올랐다. 프랑스와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문을 열고, 바흐의 칸타타에서 여주인공이 '커피커피커피...' 참으로 열정적이고 절실하게 외쳐 부르던 그 찬사가 빛나던 시절에 대해서. 그 무렵에도 카페업은 고달프고 힘든 직업이었을까? 그리고 지금처럼 맥없이 무너지던 카페들이 그 시절에도 존재했을까? 하는 생각.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 퍽 기특하면서도 쉽지 않은 생각에 도달했다. 


가만생각해보니, 커피는 언제나 번창했다. 동네의 크고작은 카페들이 무너지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되기를 거듭하는 이 시기 또한 커피는 번창하고 있다. 카페가 망할 순 있어도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 카페는 없다. 그 많은 카페가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일년, 혹은 이 삼년 사이에 무너지는 카페의 수가 부지기수 이면서도 여전히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점포가 생겨날만큼, 카페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여전히 커피는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그대로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시절에도 커피를 나르던 배가 좌초되거나 난파되는 일이 없지는 않았을 터. 커피를 실어나르는 배가 망하면 카페가 망하는 일모다 더욱 심각한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모르면 몰랐지, 우리가 아예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살았던 시대는 없었다. 그게 커피가 가진 생명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나 스스로 용감해졌다. 카페가 망하는 일은 그것과 같이 항시 있을 수 있는 위험부담일 뿐이라는 생각. 


카페의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카페가 없어져도 내 인생은 여전히 계속 살아질테니까. 그리고 난, 계속 커피쟁이로 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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