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24. 2022

우리의 몸은 그냥 'Body' 일 뿐인가?

몇해전이었다. 평소 관심은 많았지만, 마땅히 배울만한 곳이 없어서 애를 먹었던 SOMA 프로그램을을 몇 주간 참여했다. SOMA는 미국의 신체신경학자인 토마스 한나와 엘리노어 한나가 주장한 이론과 임상에 근거한 신체 신경 트레이닝운동 이었다.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SOMA라는 음료가 있는데,  이 음료를 마시면 온 몸에 활기와 에너지가 샘솟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토마스 한나가 이야기한 SOMA는 고대의 신비한 자양강장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우리의 삶이 신체경험으로 녹아 있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우이동에서 멀고도 먼 분당까지 꽤 여러번을 오갔던 것 같다.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었지만, 의외의 성과는 당연히,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매우 고질인 신체 긴장을 가지고 있다. 컨디션이 좋을때는 그럭저럭 견딜만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스스로 조절을 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 무렵 내 생각에는 비싼 강습료 만큼이나 쉽게 해결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일평생 가져온 고질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아주 당연한 것에 큰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강습료가 아깝지 않을만큼,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여러가지 알아낼 수 있었다.  


첫번째는, 아무리 유튜브와 책을 보고 또 봐도 당췌 무엇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동작들의 구체적인 용도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매우 싱겁기 짝이 없는 그 동작들이 우리의 신체 이완이나 교정에 매우 분명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닌, 나 스스로의 습관적인 문제로 효과가 오래가진 못햇다. 두번째는 내가 매우 뻣뻣한 사람이란 사실을 아주 새롭게 깨달았다. 너무나 뻣뻣한 나머지, 골반을 움직이는 것과 허리를 움직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강사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의 유연함을 과도하게 자랑하며 골반을 돌렸다. 그리고 강사가 나에게 다가와 내가 돌리고 있는 부위가 골반이 아닌, 허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다음엔 잠깐, 나는 골반을 돌리고 있노라고 우겼던 것 같고, 그 다음은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나의 뻣뻣하고 바보 같은 동작이 자기전 자꾸만 떠올라서 혼자 큭큭 거렸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세번째가 있다. 이 세번째는, 내가 첫번째 이야기에서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임에도 훈련생이 지속적으로 습관화 시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훌륭한(?) 교훈을 준 케이스이기도 하다. 그게 뭐냐면, 


멀리 있는 물건을 집기 위해 손을 뻣는 아주 '간단한' 동작임에도 그 방법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내 이야기를 별 생각없이 급하게 읽었다가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하기 십상일 것이다. 엥? 이게 뭐람. 왜냐하면, 앞서 내가 허리와 골반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처럼, 내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행동들은 의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일어나는 상황과 마음이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내 몸과 마음이라도 다르기 마련인데, 그것을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금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책상 위에 놓인 크리넥스 휴지를 모두가 똑같이 손을 뻗어서 잡더라도 신체를 사용하는 방법은 모두가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단순하게 어깨의 근육만을 사용하여 팔을 뻗는데, 또 누군가는 허리를 비스듬히 앞으로 돌린다음, 팔을 뻗어서 휴지를 집는다. 또 누군가는 목을 앞으로 구부정하게 뽑은 다음 팔을 앞으로 쓸어올려서 휴지를 집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각자가 신체활동을 습득했던 삶의 환경이나 경험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한 인간이 처하게 되는 환경적 조건이 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부모나 가족들이 보여주는 행동습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 성장 해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상깊은 사건들도 행동습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행동의 습관을 아무런 자각없이 당연한듯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의 여정 속에서 당연히 밟아 온 과정이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여러가지 생활방식과 습관들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누가 허리와 골반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은 없다. 다만, 체조나 발레, 피겨스케이팅처럼 유연한 운동에 적합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앞서 말해왔던 사띠(sati)는 어디에 소용한단 말인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역시, 앞에서 설명해왔던대로 스스로의 행동과 마음, 삶의 대부분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알아차리면 된다. 아무런 조건도 단서도 이유도 붙이지 않고, 알아차림의 그 감각이 있는지만 살피면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자각을 통해 삶의 정보들이 내 안에 축적되면서 또 다른 삶의 정보들을 통해서, 몹시도 새롭지만 이전에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사실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길을 가다 의도치 않게 풀밭에 돋아난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는 것 처럼.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우리의 인생에 대단히 큰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에 대해서 그렇다. 미국의 신체신경학자인 토마스 한나는 한 인간의 몸을 단순히 생물학적 기능을 가진 'Body'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몸을 고대 힌두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음료 'SOMA'의 이름을 따서, 한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유지해온 철학적이고 영적인 생명체로 보았다. SOMA는 신들의 젊음과 생명을 유지하는 활력을 띈 음료였다. 그 생명의 활력이 유지되고 발현될 때에만 우리의 육신 또한 가치를 갖는다고 본 것이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서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내 삶에 깃든 고유성과 그 존엄함. 그리고 그 삶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감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띠(Sati), 그다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