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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28. 2022

마음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 1

기억과 감정

 요 몇 년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잘 살펴보면 차트나 랭킹쇼가  유행인 듯싶다. 나도 두서너 개 정도를 거의 매회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데, 그중에서 제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뭐니 뭐니 해도 심령 미스터리 관련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세계적인 심령 스폿으로 손꼽는 흉가나 도로, 마을이라던가, 귀신 들린 인형들의 모음이라던가, 사람의 재량으로는 도저히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미스터리한 건축물 같은 것, 눈에서 눈물 대신 보석을 흘리는 소녀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오늘 나의 이야기 도마에 오른 소재는 '환생'에 대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환생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 되겠다.  


사실. 명상을 하다 보면, 환생에 대한 의심이 많아지고, 좀 더 분석적이 된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니, 사실은 순전히 수행자인 내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환생'은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의 기억이 재생된 것이지, 그 기억이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의 주체가 없기 때문에 나의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더구나, 한 사람이, 동일한 사람으로 몸을 바꾸어 생을 연장한다는 것은 명상을 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바람직한 개념은 아니다. 이 또한 사람으로서 선택되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마음의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는 수행자의 입장, 혹은 명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불교 철학에서는 한 사건의 '기억'을 하나의 온전한 개체로 보지 않는다. 가령, 우리 눈앞에 잘 구워진 피자 한판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눈앞에 놓인 피자 한판을 기억할 때, 단순히 피자가 우리의 머릿속이나 눈 안으로 한꺼번에 들어와서 '피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우리 안에 이미 '피자'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다음, 우리는 우리 안에 너르게 퍼져 있는 감각기관을 통해 눈앞에 자리한 피자를 인식한다. 코를 통해서 잘 구워진 밀가루 반죽의 구수한 냄새와 야채 냄새, 고소하고 달달한 치즈 냄새, 그 밖의 향신료 냄새 등등, 그리고 갓 구워진 피자의 온기가 피부에 닿는다. 그와 또 동시에 군침도는 그 생김새가 우리의 시각으로 들어온다. 과거의 피자를 먹음으로 해서 맛있었던 미각의 기억이 우리를 자극한다.   


그것은 단순히 피자에 대한  신체적 감각 기관을 통한 기억만이 아니다. 피자와 함께 정서적인 느낌도 함께 발동을 한다. 즐거움, 행복, 기쁨 등. 만약, 과거에 피자를 먹었던 기억이 즐겁지 않았다면, 또 기억은 우리가 지금 예상한 것과는 다른 정서적인 느낌의 필터를 기억에 덧 씌우게 될 것이다. 바로, 감정이다.  


우리의 기억들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뇌뿐만 아니라, 장기와 감각기관에 기억에 최적화된 신경망을 이루며 쌓여간다. 바로 뉴런 활동이다. 특히 감정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이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을 예측하며 나타내는 신체적 느낌을 동반한다.  그래서 감정은 신체 자극이 없어질 때까지만 계속된다. 여기에서 자극이란 과거의 경험과 맞물린 신체의 반응을 말한다.  이때 자극이 잊히지 않을 만큼 기억이 강렬하거나, 원만하게 해소되지 않으면 지속적이고 정체된 정서 상태가 유지된다. 이를 ‘기분’이라고 한다. 감정은 일시적이지만, 기분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지속된다.


앞서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기억은 완벽하게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신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구분하여 받아들인 정보를 재구성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경험한 과거의 또 다른 정보와 감정 상태 등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한 과정 전반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라도 저마다 받아들이는 경험과 경험 안에 녹아 있는 정서적인 느낌, 이와 더불어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기억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고유한 기억을 우리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대신, 느낌으로 간직하게 되는데, 남들과 다른, 오직 나만의 느낌이 바로 '나'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명료하게 풀어서 정리하자면, 나 또한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랭킹쇼 프로그램에서 조금은 섬뜩하게 받아들였을 이슈에 대해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구 어딘가에서 히틀러의 동일한 유전자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리 히틀러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자란 아이라 할 지라도, 아이는 자신만이 누리는 삶의 경험 정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는 히틀러의 그것과는 분명 별개의 것이다. 시대 자체가 히틀러의 시대와 획일화할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이나 발전된 사회인식이 그렇다. 아이를 데리고 1930년대나 1920년대로 타임슬립을 해서 살기 전까지는 , 그런 일이 가능하다 해도, 아이가 경험하는 고유한 삶이 히틀러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리가 태어나서 누리는 삶의 경험, 그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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