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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May 01. 2023

마흔둘, 영화 만들기 좋은 나이

2. 에세이 필름: 가족

5월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3월 2일 개강 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두 달 동안 나는 더 발전하고 성장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수업도 나름대로 열심히 듣고, 과제도 성의껏 하려고 노력하지만 뭔가 부족한 이 느낌. 첫술에 배부르려는 조급함이 원인인 것도 같고, 직장인과 학생의 경계에서 모호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게 원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직도 이 선택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고민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진 선택에 따른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5월이 지나고 6월에 종강하면 그땐 또 다를 수 있겠지. 또 9월 2학기 개강 전까지 7월과 8월 주말마다 학교에 나와 시나리오를 쓰고, 책도 읽고, 영어 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또 다를 수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앞에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자.


지난 이야기에서 예고했듯이 이번에는 수업 내용과 준비하고 있는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다. 

먼저 ‘장편영화제작워크숍Ⅰ’은 영화사를 전반적으로 훑으면서 OTT를 포함한 현대영화의 흐름까지 살펴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성영화와 누벨바그 등 영화사의 중요한 지점도 공부하고, 이야기의 3막 구조, 선형성과 비선형성 등 시나리오 창작 이론도 배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과제는 공간과 관련한 30분 분량의 에세이 필름을 만드는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에세이 필름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나는 에세이 필름의 소재로 브런치에서도 연재한 적이 있는 내 예전 고향 집 ‘용산 주공아파트’를 선택했다. 이 수업을 미리 예견하고 글을 써왔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써 논 글이 있으니 이번 수업에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몇 차례 촬영을 진행했고, 이달에는 편집과 시나리오 집필, 그리고 음악과 내레이션 작업 등에 집중해야 한다.

두 번째 ‘이야기의 특성과 갈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야기의 구조와 집필 방법 등에 관해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제작기획서를 작성하는 법이라든지, 촬영 구도 등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배웠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해 좀 부담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많은 걸 알려주시려는 열의가 보인다. 사실, 대학원에 입학해서도 다큐멘터리를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수업을 들으면서 ‘어쩌면 나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겠다’고 하는 생각을 품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역시 이 수업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체하는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최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현재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소재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 과제 또한 어느 정도 촬영을 진행했고, 이달에 집중해서 시퀀스 구성과 내레이션 대사, 음악 등을 작업해야 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대학원 1학기는 가족과 내가 살았던 공간에 관한 에세이 필름과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학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대학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과 관련한 총체적인 부분을 온전하게 혼자 힘으로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 편집까지 그동안 흩어져 있던 경험과 공부가 이번 학기를 계기로 하나로 모이는 걸 느낄 수 있다. 

촬영에 관한 용기를 갖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아마 대학원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내가 촬영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도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물론, 실력은 아직 형편없지만 재미를 붙였다고나 할까?

그거만이라도 어딘가?     


부끄럽지만 시나리오, 촬영, 편집 등 모든 것은 솔직히 예전부터 오래도록 홀로 실천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그런 걸 이제야 대학원에 다닌다는 명분을 핑계 삼아 뒤늦게 실천하고 있는 거다.

어찌 됐든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혼자 있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지난 주말 고향에 내려가 마흔두 번째 생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아직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제물을 완성하는 데 목적을 두기로 했다. 물론, 나이 어린 동기생들과의 경쟁심도 끊어버리기로 했다. 그들은 그들의 길과 방법이 있는 거고, 난 나만의 길과 방법이 있는 거다. 남과 비교하느라 내게 집중할 시간을 뺏기는 어리석음에서 이젠 벗어날 나이니까.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님을 포함해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부모님은, 형들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번 학기를 통해 영화와 촬영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어쩌면 가족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학기를 소중히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꼭 과제물을 완성하도록 하자.


과제를 완성하면 또 다른 길이 보일 테니까.     


고맙습니다.     


p.s: 다음에는 오늘 적은 수업 내용과 관련해 좀 더 자세하게 적어봐야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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