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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Oct 29. 2023

1년

Self-Portait.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맑음.

찬란한 햇빛 속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반짝이던 아름다운 가을날이었다. 

흔한 가로수를 바라보면서도 감동할 수 있는 이날이 이제는, 4월의 그날처럼 마냥 계절을 즐길 수 없는 날이 돼 버렸다.     


1년 전, 159개의 별은 허망하게 빛을 잃었다. 난 아직도 빛을 잃은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멍하니 지켜만 볼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멍한 눈으로 슬픔을 바라보며 그 슬픔과 분노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전부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 텐데 아직은 찾지 못하겠다. 그래서 더욱 무기력해진 하루였다.     


1년 전, 참사가 일어난 곳을 나는 지난주 금요일에 조용히 다녀왔다. 기억의 거리로 조성된 그곳에 먼저 온 몇몇이 나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쓸쓸한 조형물과 좁은 골목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또 누군가는 그걸 촬영하고 있었다.

난 그 골목을 한 번 걸어보고 조형물을 바라보며 10분 정도 머무르다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니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는 뜬금없는 멜로디가 반복되고, 좀이 쑤시듯 한 곳에 서 있기가 힘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오래 머무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1주기 추도는 별 볼 일 없이 끝났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1년간 이 슬픔을 과연 몇 번이나 떠올리고 생각했을까? 할 수 있는 게 기억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소홀히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우선 기억을 해야 앞으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주시할 수 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건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과연 우리는 이 기억을 오늘보다 더 선명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세월호마저 흐릿해지고 있는 걸 보면 이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물론, 모든 걸 기억하며 살 순 없지만, 최소한 기억에서 흐릿해지기 전에 우리는 떠난 이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는 해놓아야 할 텐데. 그 작은 발걸음 하나가 이리도 쉽지 않으니, 세상은 정말 이토록 비정한 것인가. 하긴 이런 힘없는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선 아수라가 펼쳐지고 있으니.     


그저 비정한 현실에 좌절하지 말자고 또 다짐할 뿐이다. 

그래, 정말 좌절하지 말자.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사소한 것일지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늦을 순 있어도 끝내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를 통해 증명된 진리니까.     


난 진리의 편에 설 거니까.

진리의 편에 서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데,

암튼, 내 비록 우주에선 사소한 먼지에 불과할지라도, 어디에도 없는 고유하고 고귀한 먼지라는 걸 잊지 말고 오늘을 살자.     


별이 된 이들을 추모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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