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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Nov 14. 2023

53년

Self-portrait.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맑음.

그러니까 어제 13일이 전태일 열사 53주기였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당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외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날 경향신문을 제외하고 주요 신문 지면에 전태일 열사 53주기 관련 소식이 거의 실리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감동적으로 읽은 김소윤 작가의 소설 ‘난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잊히는 일이었다. 망각은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고 세월은 덧없는 바람과 같아서 살아온 자국들을 매섭게 지워갔다.”


망각에 저항하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숭고한 그의 정신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그래도 세상엔 나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분명 생각보다 더 많을 거라 믿는다. 그들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는 연대감을 느끼며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 가슴을 울린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잘 변하지 않기에 내 주위에는 여전히 이 시대를 견뎌내는 많은 전태일이 있다. 이들을 위한 얘기를 하겠다는 게 내 꿈의 일부일 텐데, 난 지금 내 꿈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을까? 늘 하는 반성이지만 오늘은 좀 더 깊이 반성해야겠다.     


내 꿈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드라마과정 기초반 과정을 다음 주부터 시작한다. 기초반으로 시작해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대략 2년 정도 될 텐데 끝까지 한 번 가볼 생각이다. 아마 앞으로 2년이란 시간은 대학원과 교육원 생활이 주를 이루게 될 텐데 2년이라는 이 시간 동안 내 실력을 키워 꼭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선보여야지. 

많은 이들에게 선보일 내 얘기 안에는 꼭 이 시대의 전태일을 등장시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항상 가슴에 담아뒀지만, 밖으로 드러낼 실력이 안 돼 여전히 담아두기만 했었는데 오늘부터 노력해 꼭 2년 안에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겠다. 그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날은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빨라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으니 결국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는 달라진다. 그러니까 결국엔 오늘을 잘 잘 사는 말이다. 

잘 살아야지.




내가 전태일 열사를 알게 된 것도 역시 영화였다. 배우 홍경인 씨가 열연했던 박광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통해 열사를 처음 알게 됐고, 고등학교 시절 서점에 가서 ‘전태일 평전’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사 읽으며 ‘노동’이라고 하는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대학 시절 2년여간 학생회 활동을 하며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의 단어를 매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는 그렇게 열심히 외치고, 거리로 나가 함께 연대하는 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게 세상을 변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결정적 힘은 아니더라도 힘은 보탤 수 있다고 믿었다. 

솔직히 지금은 그런 믿음이 내 안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신념은 이 시대의 전태일을 말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 결국엔 예술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이 그것이라는 걸 지나온 삶을 통해 깨닫게 됐다.     


지난 게으름을 딛고 조금씩 더 노력하면 조만간 그들에게 내 마음이 닿을 거라고 믿는다. 또 내 얘기를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질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 꿈은 그들과 닿아있다는 확신으로 나는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53년 전, 한 청년 노동자의 숭고한 희생이 53년이 지난 오늘을 살고 있는 내게 이렇게 닿았다.

난 그를 잊지 않을 테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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