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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Aug 25. 2021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가 쥬리와 함께 목욕을 한 후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옷을 불태우는 장면은 쥬리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의식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우리 시대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혈연으로 선택당한 가족이 아니라 자신들이 선택한 가족이라는 점에서 혈연보다 더 진하고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감독은 가족 구성원을 통해 현재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용직 노동자, 고용주의 말 한마디에 직장을 잃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 그리고 가족 폭력 피해 아동 등.

이는 비단 일본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제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가족들의 사연이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에게 몰입하게 한다.

감독은 사회적 약자들로 구성된 가족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는다. 예를 들어, 도둑질을 스스럼없이 하는 이들이지만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너무 몰입돼 객관성을 잃지도 않는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잔잔하게 화면에 담는다.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시바타 가족이 쥬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쥬리가 시바타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 보인다. 이어 후반부에는 그렇게 새롭게 구성된 가족이 다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마지막 30분 동안 인물들을 담담히 지켜보는 연출력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기준은 시바타 가족이 바닷가로 함께 떠난 가족여행이다. 가족여행을 준비하는 과정과 바닷가에서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이라고 생각됐고, 또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가 쥬리와 함께 목욕을 한 후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옷을 불태우는 장면은 쥬리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의식이다. 이어 가족들은 컴컴한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며 불꽃놀이를 소리로만 즐긴다. 이때 카메라는 가족의 모습을 먼 거리에서 담는다. 가족들의 안식처인 허름한 집은 주변의 고층 아파트와 맨션에 둘러싸여 있다.

험한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다. 영화의 주제를 한 장면으로 꼽아보라면 이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으로 해변에서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이 모두 손을 잡고 작은 파도를 뛰어넘으며 웃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함께 역경을 이겨낼 거란 희망을 주는 장면이지만 현실은 작은 파도, 균열에도 손을 잡은 가족 모두를 흩어지게 만들었기에 영화를 다 본 후 이 장면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결국, 할머니가 죽은 후 작은 사건을 통해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행복을 꿈꾸고 같은 곳을 바라보던 작은 집도 남겨지게 된다. 그 집은 상처 받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모여서 행복을 누릴 수 있던 공간이었다.

영화를 다 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각자 돌아간 곳에서 앞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쥬리는 무엇을 본 것일까? 혹시 가족 중 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영화 속 인물의 삶이 어떨지 생각하게 해주는 긴 여운이 남은 작품이었다.

여담으로 ‘어느 가족’을 보는 내내 여러모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닮은 듯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느 가족’이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면 ‘기생충’은 그 이듬해 수상작이고 둘 다 아시아 영화다. 무엇보다 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기생충’이 유머와 스릴러, 서스펜스 등 여러 장르를 혼합한 화려한 연출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면, ‘어느 가족’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출로 잔잔한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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