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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Sep 01. 2021

앙: 단팥 인생 이야기

가와세 나오미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는 평범하기에 위대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시름에 잠겨있을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영화는 벚꽃이 활짝 핀 어느 봄, 내키지 않는 도라야키를 파는 ‘도라하루’의 사장 센타로에게 도쿠에 할머니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아르바이트 일을 할 수 있게 부탁하지만, 센타로는 만 77살의 나이가 부담스러워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나 도쿠에 할머니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센타로를 찾아오고, 자신이 만든 단팥을 건네고 돌아간다. 처음에 센타로는 도쿠에 할머니가 건넨 단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들어 쓰레기통에 있던 단팥을 꺼내 맛을 한번 보고는 그 깊은 맛에 깜짝 놀란다. 며칠 후 ‘도라하루’를 다시 찾아온 도쿠에 할머니를 센타로는 반갑게 맞고, 그녀를 고용하면서 제대로 된 단팥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단팥을 만들며 도쿠에 할머니는 센타로에게 단팥만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법을 알려준다. 그건 바로 마음이 원하는 일을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타인의 편견에 상처 받고, 세상으로부터 밀려났지만, 끝까지 꿈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도쿠에 할머니가 들려주는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영화 속 주인공인 센타로와 와카나에게 알려주는 진정성 있는 내용은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해져 많은 감동을 선사한다.



도쿠에 할머니의 단팥으로 ‘도라하루’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도라야키를 사가는 맛집으로 변한다. 그렇게 여름 한 철 센타로와 도쿠에 할머니는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람들의 시선에 여름 한 철 뜨거웠던 열기는 금세 식어버린다. 도쿠에 할머니가 한센병을 앓아 격리시설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소문으로 번지면서 사람들은 싸늘하게 발길을 끊는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센타로에게 도쿠에 할머니는 또 한 번 인생의 가르침을 전한다. 아무 잘못 없이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다고. 그렇지만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결국, 다시 도쿠에 할머니는 시설로 돌아가고, 센타로는 가게 단골인 중학생 와카나와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러 시설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도쿠에 할머니를 만난 센타로는 다시 힘을 내지만 센타로에게도 세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가게 주인의 몰상식한 요구에 좌절한 센타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그때 다시 와카나가 찾아와 함께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러 가지만, 도쿠에 할머니는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뒤였다. 마치 두 사람이 다시 찾아올 걸 예견한 듯 도쿠에 할머니는 두 사람을 위한 마지막 말을 녹음기에 담아놓는다.

도쿠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센타로와 와카나에게 남긴 메시지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주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아름다운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내레이션’과 ‘인서트’를 잘 활용한다.

자연을 좋아해 나무를 관찰하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도쿠에 할머니의 삶의 자세는 영화 속에서 인서트 장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인서트 장면들로 인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는 시각적으로 풍성해진다. 특히 영화 중간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꽃잎이 만개한 벚나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영화의 복선 역할도 하고 있다. 벚나무를 사랑했던 도쿠에 할머니는 결국 왕벚나무로 새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는 도쿠에 할머니의 말은 자연과 일상에 스민 바람과 햇빛을 담은 인서트로 아름답게 탄생한다.

내레이션의 경우 센타로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영화 속에서 직접 말하는 장면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아울러 이야기의 흐름을 사계절의 흐름과 일치시킨 감독의 연출력 또한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봄으로 시작해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쓸쓸한 가을과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 흐름은 고스란히 센타로가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 희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장사를 하다가 세상의 편견에 좌절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희망을 품는 내용과 일치하면서 영화의 주제를 더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도쿠에 할머니가 떠나고 다시 돌아온 봄, 어김없이 벚꽃이 활짝 피었다. 벚꽃길을 와카나가 걷는다. 와카나가 벚꽃길을 걸어 도착한 곳엔 센타로가 도쿠에 할머니에게 배운 단팥으로 도라야키 장사를 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에 묶여 있던 가게를 나와 스스로 길을 개척한 센타로. 센타로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외친다.

“도라야키 사세요!”

이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지금껏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엔딩 장면 중 하나였다.


봄이 오면, 그리고 벚꽃이 피면 많은 사람은 어느 노래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앞으로 벚꽃을 볼 때마다 이 영화를 생각할 거다. 그리고 조용히 내게 속삭이겠지.

‘괜찮아. 난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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