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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Mar 20. 2022

3:10 to Yuma

제임스 맨골드 감독. ★★★★

나이가 들수록 점점 서부영화가 좋아진다.


물론, 아메리카 원주민을 악으로 규정하고 살상을 일삼는 백인을 미화하는 부류의 서부영화는 쳐다보지도 않지만.

작년에 개봉한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를 꽤 인상적으로 봤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에 그래도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내용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감동을 선사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는 아니지만 크리스챤 베일과 러셀 크로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3:10 to Yuma>도 보고 난 후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척박하고 건조한 땅 위에서 가족을 지키고 평범한 삶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 비록 뛰어나진 않지만 평범하기에 위대해질 수 있는 인물.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댄 에반스(크리스챤 베일)’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남북전쟁으로 다리를 잃었지만, 두 아이와 아내와 함께 자신의 땅에서 목장을 키워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가장. 하지만 시대는 서부 시대다. 폭력과 야만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시대. 그 시대에 법은 한없이 초라하다. 마치 댄의 안식처인 외딴집이 황량하고 드넓은 땅 위에서 초라해 보이는 것처럼.

댄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는 초라한 법을 비웃으며 서부의 야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부하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죽일 수 있고, 강도 행위를 약육강식의 정당한 생존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3:10 to Yuma>는 이렇게 상반되는 두 인물이 며칠을 함께 보내게 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은행과 기업의 돈을 빼앗은 범죄자를 굳이 먼 지역으로 보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3:10 to Yuma>의 이야기 전개는 보기에 따라 다소 작위적일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사법제도가 지금과 같지 않은 시대에 이와 같은 무법자는 즉결 처형도 가능할 텐데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하면 그 시대에도 누군가는 야만이 아닌 문명에 기반한 법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바로 실천이다. 실천에는 대가가 따른다. 만약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라면 자신이 믿는 신념과 가치를 위해 스스럼없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은 다르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작년에 본 <퍼스트 카우(First Cow)>와 <3:10 to Yuma>가 상당히 비슷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댄은 굳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벤을 호송 열차에 실을 필요가 없었지만 결국에는 홀로 남아 이를 실천한다. 그는 전쟁 영웅도 아니고 빚에 허덕이며 가족 부양에도 성공적이지 못한 가장이다. 그러나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남의 돈을 빼앗는 이는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고, 그 신념을 끝까지 꺾지 않았기에 전쟁 영웅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댄의 위대함은 결국 벤의 마음도 움직인다. 비록 자신을 교수대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인물이지만 벤은 댄의 신념에 감동한다. 벤이 댄에게 영향을 받게 되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댄이 전쟁 당시 다리를 다친 사연을 벤에게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퍼스트 카우(First Cow)>를 볼 때도 느꼈지만 서부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정확한 고증에 따른 시간 여행이다. <3:10 to Yuma>에서도 몇몇 장면은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재미를 줬는데 그중 하나는 19세기 말에 미국으로 건너와 여러 기반시설을 건설했던 청나라 노동자들의 모습,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호텔 신혼부부 방의 미장센이었다.



이 영화는 야만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결국 인간이기에 지키고 간직해야 할 도덕적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도덕적이라 좀 고루할 수도 있지만, 또 그렇기에 감동적이다.

수많은 야만 위에 우리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얇은 천을 덮었지만 지금 우리를 돌아보면 어떤가? 문명의 천은 속절없이 날아가 버리고 야만의 실체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곳이 세계 곳곳에 있지 않은가?     


이 야만을 다시 덮을 수 있는 건 역시 댄과 같은 평범한 이들의 위대한 실천뿐이다.



p.s : 참, 그러고보니 인상적으로 봤던 서부영화 중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도 있었네. 조만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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