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2년 6월 24일 금요일, 맑음.
새벽까지 맹렬하게 퍼붓던 비가 그치고 점심쯤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집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독서로 보냈다.
중국의 ‘혼’이라고 불리는 루쉰 작가의 ‘광인일기’를 읽었다. 얼마 전 JTBC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소개돼 이번 주 도서관에 가서 소설집 두 권을 빌렸다. 오늘은 ‘광인일기’와 ‘쿵이지’, ‘약’ 등 이렇게 3편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소설에 관한 느낌과 생각 등은 조만간 다시 적어야겠다.
고향에 내려오면 매일 고향 이곳저곳을 걸으려 노력한다. 구체적으로 고향이라기보다 내 유년의 추억이 묻어있는 동네와 골목을 걸으려 노력한다. 이번에도 고향에 머무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거닐며 글쓰기 소재도 얻는 등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내가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본당에 들러 건물을 잠시 들여다봤다. 내 본당은 충주 지현성당이다.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복사도 하고 성가대와 레지오 활동도 했다. 여름 방학 때는 성경학교도 다녀오고 꽤 많은 친구를 사귀며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유년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곳이다. 물론, 지금은 이곳에서 만났던 이들 중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추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기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그때의 모습들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삼십 대 중반까지는 서울에 올라가서도 주일에는 꼭 미사에 참석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성당에 가지 않는다. ‘냉담자’로 분류될 수 있는데 사실상 무신론자에 더 가깝다. 나이를 먹으며 더 많이 경험하고, 익히고, 깨닫고, 때론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렇다고 남을 설득하거나 소리 높여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난 자연스럽게 무신론자가 됐다는 걸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예전에 간절하게 기도하며 뭔가를 원했던 그 시절의 순수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거나 민망해 보이진 않는다. 여전히 우리 엄마는 매일 하루 중 얼마를 시간을 바쳐 기도를 드리는데 어쩌면 엄마의 그 간절한 기도로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내 신념을 지키는 게 위험하지 않고, 내 신념을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 사회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까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이 하나 해결하지 못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분노와 폭력에 고통받고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문득, 오늘 하루를 정말 감사하게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는 것, 편하게 누워 책을 읽었다는 것, 잠자리와 먹을거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꿈을 품고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
또 이렇게 자기 전에 내 하루를 기록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사실상의 무신론자가 아니었다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렸을 텐데.
그래도 한때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으니까(형식적으로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지만) 오늘은 자기 전에 짧게나마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야겠다.
이 험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고행의 길 위에서,
오늘 하루의 여정을 무탈하고 평안하게 보낼 수 있었음에,
거짓되지 않은 진실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