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2022년 6월 20일 월요일, 습함.
지난 주말 몸은 푹 쉬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22년을 주기로 한 바이오리듬, 혹은 일주일을 주기로 한 바이오리듬이든 ‘바닥’을 친 건 분명했다. 가장 아래로 내려가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혼자 우울함과 싸워야 했다. 싸웠다기보다 버텨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겨우 다시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스트레스로 고통받으면서 명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명상을 통해 평정심을 찾고 다시 걸어가야 할 앞을 더 선명하게 보고 싶었다. 다행히 명상은 효과가 있었다.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냈고 그 원인을 떨쳐내기로 다짐했다. 또 용기를 내기로 다짐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주체적이지 못한 삶’이었다. 온갖 변명을 대며 올해도 이어가고 있던 주체적이지 못한 일상이 결국 내 삶에 위험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더는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게 변하진 않겠지만 어제보다 오늘 더 주체적으로 살기로 다짐하고 그렇게 실천했다. 아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주체적인 삶을 살겠지? 그렇게 할 거다.
나를 믿고 당당하게 내 길을 걸어가자.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벗어나나 싶더니 더 어둡고 긴 터널의 초입에 들어간 느낌이다. 그 절망감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 무섭게 오르는 물가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주가지수가 이를 상징한다. 여기에 오늘도 절감할 수 있었던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 이를 무시하거나 혹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행동들.
어디서 희망을 발견해야 하는 걸까?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고, 더 쉽지 않은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거의 확신에 가깝다는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걸 보면 큰 문제는 문제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지. 희망을 찾아, 아니 루쉰의 말처럼 절망에 반항하며 가야지.
내일은 꼭 도서관에 가서 루쉰의 작품들을 빌려 읽어야겠다. 특히 ‘광인일기’를 꼭 읽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루쉰의 글들을 통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강연하는 내용이었는데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주에는 꼭 루쉰의 책을 읽고 앞으로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그러면서 내가 가려는 길이 가치 있고 옳은 길이란 걸 확인해야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날이라도 상관없다. 내 생각이 바뀌고, 결심을 실천하는 날이라면 그 어느 날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날이니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