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웅 Jun 20. 2022

절망에 반항하며

PORTRAIT. 2022년 6월 20일 월요일, 습함.

지난 주말 몸은 푹 쉬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22년을 주기로 한 바이오리듬, 혹은 일주일을 주기로 한 바이오리듬이든 ‘바닥’을 친 건 분명했다. 가장 아래로 내려가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혼자 우울함과 싸워야 했다. 싸웠다기보다 버텨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겨우 다시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스트레스로 고통받으면서 명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명상을 통해 평정심을 찾고 다시 걸어가야 할 앞을 더 선명하게 보고 싶었다. 다행히 명상은 효과가 있었다.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냈고 그 원인을 떨쳐내기로 다짐했다. 또 용기를 내기로 다짐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바로 ‘주체적이지 못한 삶’이었다. 온갖 변명을 대며 올해도 이어가고 있던 주체적이지 못한 일상이 결국 내 삶에 위험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더는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게 변하진 않겠지만 어제보다 오늘 더 주체적으로 살기로 다짐하고 그렇게 실천했다. 아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주체적인 삶을 살겠지? 그렇게 할 거다.     


나를 믿고 당당하게 내 길을 걸어가자.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벗어나나 싶더니 더 어둡고 긴 터널의 초입에 들어간 느낌이다. 그 절망감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 무섭게 오르는 물가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주가지수가 이를 상징한다. 여기에 오늘도 절감할 수 있었던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 이를 무시하거나 혹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행동들.      


어디서 희망을 발견해야 하는 걸까?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고, 더 쉽지 않은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거의 확신에 가깝다는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걸 보면 큰 문제는 문제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지. 희망을 찾아, 아니 루쉰의 말처럼 절망에 반항하며 가야지.


내일은 꼭 도서관에 가서 루쉰의 작품들을 빌려 읽어야겠다. 특히 ‘광인일기’를 꼭 읽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루쉰의 글들을 통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강연하는 내용이었는데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주에는 꼭 루쉰의 책을 읽고 앞으로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그러면서 내가 가려는 길이 가치 있고 옳은 길이란 걸 확인해야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날이라도 상관없다. 내 생각이 바뀌고, 결심을 실천하는 날이라면 그 어느 날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날이니까.     


고맙습니다.


지난달 광주 순례 당시 전남대학교에 가서 찍은 윤상원 열사 흉상. 루쉰은 아니지만 눈매가 닮아 떠올랐다.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