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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Jun 06. 2022

소중한 선물

PORTRAIT. 2022년 6월 6일 월요일, 비 온 뒤 갬.

현충일 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전쟁이 떠오르고, 한국전쟁 하면 나는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가? 거실 서랍에서 아버지가 꺼내 보여줬던 일제강점기 시절 소학교 졸업앨범.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앨범을 통해 할아버지 생존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0대 시절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해상도가 좋지 않은 흑백의 단체 사진 속에 이목구비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작은 얼굴. 그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본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할아버지는 정부 공식 기록을 통해 납북피해자로 분류돼있다. 1950년,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할아버지.

솔직히 그립다거나 애틋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 다만, 역사의 비극 평범하기 그지없던 우리 가족마저 지나치지 않았다는 점이 가끔 허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할아버지께는 죄송스럽지만 오늘 하루, 할아버지를 생각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밀린 숙제를 하듯 제67회 현충일의 끝자락에서 할아버지의 영면을 기원한다.


어디에 계시든, 부디 편안하시길.




오전에 충주 부모님 집에서 나와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대전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내포로 돌아왔다. 방 청소를 하고, 혼자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소화를 시킬 겸 제자리걸음을 걸으며 뉴스를 보고, 하루를 마감하기 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고향에 내려가 푹 쉬고 돌아왔다. 토요일 오전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프리미어 프로 CC’ 수업을 듣고 바로 충주로 내려왔다.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고속도로가 상당히 막혀 예상보다 30분 정도 늦게 충주에 도착했다. 토요일 저녁, 집에 도착한 후부터 오늘까지 역시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갔다. 그 와중에 책을 한 권 읽은 건 그나마 3일의 연휴를 의미 없이 보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작년에 나온 김헌 교수의 ‘그리스 문명 기행’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며 트로이아 전쟁을 비롯한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다시 한번 배울 수가 있어 교양을 쌓기에 제격인 책이었다. 작가의 글솜씨 또한 쉽고도 지루하지 않게 여행기를 기록하고 있어 몰입도가 좋았다. 거기에 풍부한 사진 자료와 그리스 지역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지도 그림까지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리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괴롭혔다.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더불어 이번 연휴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과 식사를 같이했다는 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절감하게 된다. 이제 부모님도 어느덧 70대에 접어드셨고, 나 또한 40대에 이르렀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유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당연히 부모님도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일 것 같지만, 문득 세월의 비껴가지 못한 부모님의 모습을 깨달을 때면 짠한 마음에 목이 멜 때가 있다. 마음은 항상 더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막상 부모님 앞에 앉으면 유년 시절의 철부지 막내로 돌아가는 나. 무슨 공식처럼 다시 고향을 떠나 돌아갈 때가 돼서야 다음엔 더 잘해드려야지 후회하며 반성하게 된다.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내포로 이동하면서 오랜만에 가객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다. ‘부치지 않은 편지’,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등을 연이어 들으며 지나간 내 20대의 시절을 생각했다. 서툴고 외로웠던 그 시절의 나.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준 건 바로 김광석의 노래들이었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 덕분에 평범했던 내 하루는 특별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일상. 그 일상도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는 오늘 나를 위로해준 기억들처럼 추억으로 남을 거다. 그러니 조금도 허투루 보내지 말고 꿈을 향해 이어진 여정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다. 열심히 살자고 다짐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우리는 늘 소중한 선물을 받으며 살아간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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