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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Jul 11. 2022

마흔하나, 영화 만들기 좋은 나이

2.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2주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단편영화 만들기 : 안으로부터, 밖에서부터’ 워크숍도 벌써 3회 차까지 마쳤다. 1회 차 이후 2주 동안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구상하고 다듬는 시간이었다. 워크숍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1차 트리트먼트까지 완료했다. 


난 몇 년 전부터 하나의 장면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지내왔다. 어떤 장면이냐면 바로 주인공들이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장면이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채 숨쉬기 힘든 삶을 이어가지만, 절망에 굴하지 않고 중력을 거스르듯 꺼지지 않는 에너지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모습. 완벽한 기교의 발현이 아니라 에너지가 이끄는 본능적인 몸부림으로 희망을 번지게 하는 그런 모습을 꼭 내 영화에 담고 싶었다.


문제는 누가 왜 이런 춤을 추느냐는 것이었다. 대상과 개연성을 찾는 문제가 곧 내 단편영화 시나리오의 출발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워크숍에 참여하기 얼마 전, 대상을 찾게 됐다. 대상은 바로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이라 불리는 청춘들이었다. 보호시설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되면 정착지원금을 받고 사회에 던져지는 청춘들. 이미 이들에 관한 얘기는 미디어를 통해 꽤 알려졌다. 나 또한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통해 이들에 관한 얘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중 한 20세 보호종료아동이 시설을 나온 후 얼마 되지 않아 고독사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 고인의 주검은 6개월이 지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쓸쓸히 잊히고 있었다.


이 얘기를 접한 후 퍼즐이 맞춰지듯 로그라인을 완성하고 짧은 시놉시스에 이어 1차 트리트먼트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 로그라인

만 18세가 돼 보호시설을 나온 한나와 수지가 힘겨운 현실을 함께 연대하며 죽은 친구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로 다짐하는 이야기.     


■ 시놉시스

작은 사건에 휘말려 쫓기게 된 한나. 자신을 쫓는 사람에게서 겨우 도망쳐 수지가 일하는 서울의 허름한 동네로 온다. 한나의 연락을 받은 수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한나를 만난다. 동네 작은 공터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음식을 나누며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며칠 후면 세상을 떠난 선영의 기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선영이 오로라를 직접 보는 게 꿈이었다는 걸 기억하며 언젠가 두 사람이 꼭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가서 오로라를 대신 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오로라가 나올 때 선영의 영혼을 불러오기 위한 춤을 추자고 약속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어떤 춤을 춰야 할지 고민하며 가로등 하나가 초라하게 켜진 공터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 등장인물

1) 한나 – 즉흥적이고 외향적인 친구. 퇴소할 때 받은 정착지원금 500만 원을 가상화폐로 날린 후, 이곳저곳을 떠돌며 작은 범죄에 휘말리다가 쫓기는 신세가 된다.     


2) 수지 – 차분하고 지적인 친구. 대학을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으고 있다. 달동네 작은 원룸에 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 기획의도

인정하긴 싫지만, 어느덧 기성세대가 돼버린 나. 기성세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20살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의 고독사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 소식을 접한 후, 힘겨운 이 시대를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에게 작은 응원의 마음이나마 전하고 싶어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 




지난주 토요일 3회 차 워크숍에서 1차 트리트먼트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할 곳이 많음을 발견했다. 특히 보호종료아동을 대상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을 받은 건 소중한 성과였다. 이들을 절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내 의도가 왜곡돼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번 주는 트리트먼트를 수정하면서 시나리오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기간이 될 것이다. 

월요일 아침, 한 주의 시작을 내 영화를 위한 준비로 보내는 것이 뿌듯하다.      

이 기분을 잊지 않고 한 주도 열심히 달려보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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