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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Jul 20. 2022

정상에 오르진 못해도

PORTRAIT. 2022년 7월 20일 수요일, 흐림.

2022년 7월 18일 새벽 지리산 유암폭포 모습.


허벅지와 종아리의 통증이 여전하다. 아마도 이번 주까지는 통증에 시달리며 보내야 할 것 같다.      


지난 일요일(17일), 백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된 1박 2일 지리산 산행은 월요일 오전 중산리에 도착하면서 마무리됐다. 월요일 새벽부터 남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천왕봉에 오르진 못했지만 대신 평생 한 번 볼까 한 장관을 마주한 건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5.3㎞에 이르는 중산리 계곡을 따라 하산하며 유암폭포를 비롯해 여러 폭포를 마주쳤다. 무섭게 쏟아붓는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 폭포의 줄기는 강렬했고, 소리 또한 거침없었다. 새벽 5시 20분경부터 시작된 혼자만의 하산길에서 그야말로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김수영의 詩 ‘폭포’ 中 )' 폭포를 바라보며 결국 이번 산행은 이 폭포를 만나기 위해 힘들게 오른 여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지리산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내지르며 환호했다. 그리고 외쳤다.


난 행복하다!



7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혼자 지리산을 찾았고, 그치지 않는 비를 맞으며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지 계속 걸었다. 결국 천왕봉은 안전상 통제돼 하산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처럼 중산리 계곡을 내려오며 거침없는 계곡물에 환희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이번에도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진 못했지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지리산 산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하나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 본다. 


정상에 오르지 못했으니 다시 지리산을 찾을 이유가 생겼다. 가을쯤, 지금보다 정리가 더 된 후에 찾아야겠다. 그때는 꼭 천왕봉에 올라 산등성이 너머 내가 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가늠해야지.     


정상에 오르지 못했기에 다시 찾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위해 다시 일상을 버티며 나는 나아간다. 나는 살아간다. 비록 이번엔 정상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인생은,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1박 2일 동안 하루에 1000m 정도를 오르고 내려오며 수많은 잡념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중에서도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지리산의 가르침이었다. 

내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고, 어떤 취급을 받든 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이 마음이면 앞으로 세상에서 못할 게 무엇이랴.



허벅지와 종아리의 통증이 여전하다. 이 통증이 남아있을 때까지 열심히 지리산에 오르고 내려오던 나를 기억하자. 특히 장쾌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기백을 생각하며 나를 굴복시키려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자.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길을 가는 거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환희를 좇아,

다시 가 보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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