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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Aug 25. 2022

마흔 하나, 영화 만들기 좋은 나이

5. 두려움과의 싸움

이제 촬영까지 열흘 정도 남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어려움을 뚫고 촬영을 마치겠단 각오로 똘똘 뭉쳤지만, 일주일 전만 해도 내 정신상태는 도저히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배우 캐스팅을 끝내고,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촬영 장소를 정한 만큼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2주의 시간 동안 이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때부터 가장 큰 시련은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는 거였다.      


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포기할까? 

그래, 포기하는 게 맞겠지? 

역시 나는 사람들과 뭘 함께하는 위인은 되지 못하는 걸까?


의심은 날이 갈수록 증식했고, 내 목구멍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숨을 쉴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신경은 예민해져 사소한 일도 오해하고 속으로 화를 냈고, 급기야 정신쇠약은 신체적 통증으로 발현했다. 편두통과 가슴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이 고통의 시작은 역시 사람, 즉 ‘관계’였다.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처럼 타인은 언제든 내게 지옥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이번 경우에는 배우들이 그랬다. 오디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쉽게 가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의욕이 앞서 배우들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암튼 무엇이 문제였냐 하면 배우들이 대본 리딩 횟수에 불만을 품고 내 작품에 큰 열의를 갖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부터 과연 이 배우들과 현장에서 내가 원하는 장면들을 만들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그 불안은 어김없이 내 영혼을 잠식했다.      


이 같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내가 겨우 회복할 수 있던 건 아이러니하지만 또 다른 ‘관계’ 덕분이었다. 조연출을 선뜻 맡아주기로 한 후배와 또 다른 지인들의 격려 및 조언을 바탕으로 나는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배우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교체하는 과정도 고민스러웠지만 정중하게 지금 내 정신상태를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배우들도 내 사정을 이해해줘 짧은 만남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고난은 한 번에 몰려오는 것이라고 하던가? 배우 문제와 함께 장소에 대한 문제도 들이닥쳤다. 야외 촬영이라는 점 때문에 항상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어김없이 변수는 나를 찾아왔다. 때문에 플랜 A를 포함해 최소 B와 C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당연히 장소가 변경되니 시나리오도 수정될 수밖에 없는 법. 이렇게 끝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며 2주가 넘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런 와중에 드디어 워크숍 구성원의 첫 촬영이 있었다. 지난 21일 한국과학기술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촬영이 12시간 정도 진행됐는데 나는 스크립터로 촬영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촬영 현장에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왜 이런 고민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다시 한번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상 아마추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현장은 즐거우면서도 진지했다. 이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참여하며 나는 2주 넘게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스트레스를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이 모든 과정이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로 짧게 기억될 순간이 올까?

분명한 건, 나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세상과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배움을 통한 깨달음은 바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깨달음은 당연히 ‘두려움과의 싸움’에 굴복하지 말자는 것.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에서 언제나 두려움에 맞서고 있다. 두려움은 굴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극복하고 나면 다시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나 또한 지금 다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의 끝이 보이진 않지만 보이는 길을 걸어가는 것밖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길로 열심히 걸어가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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