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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Sep 12. 2022

늦지 않았다

PORTRAIT. 2022년 9월 12일 월요일, 약간 흐림.

추석 연휴를 마무리하기 위해 이렇게 쓴다. 역시나 계획했던 공부나 업무는 손도 대지 않고 놀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눈을 감고 연휴 기간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내일을 시작하는 디딤돌로 삼아야겠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록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나마 몇 년 만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둘째 형이 고향인 충주에 내려와 우리 가족 6명은 모처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게 추석날인 지난 10일이었다. 아침 8시에 차례를 지내고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형수님이 퇴근한 저녁 8시에 한자리에 모여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돈을 내 미리 사 온 소고기를 구워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었다. 큰형이 연기를 빨아드린다는 그릴을 사 와서 가능한 일이었다.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고, 아버지가 잠깐 언성을 높였지만 흔히 가족끼리의 식사 때 일어나는 말다툼도 없었다. 이젠 나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법을 아는 나이가 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후식으로 형수님이 가져온 팥빙수를 함께 나눠 먹으니 참 잘 먹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저녁 자리였다.     


가만히 보면 우리 가족은 여전히 각자의 위치에서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평등하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아니, 노랫말처럼 익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지. 익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애잔해질 때도 있다. 부모님을 비롯해 형들과 형수님께 더 많은 걸 해드리지 못하는 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둬 돈을 많이 벌면 우리 가족에게 더 많은 걸 해주기 위해서다. 그걸 이기적이라고 욕할 사람은 없겠지? 우리 가족은 언제나 항상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타인에게 피해를 줄 만큼 힘이 있어 본 적도 없었다. 이제 부모님 모두 일흔의 고개를 넘으셨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성공해 부모님께 기쁨을 안겨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물론, 이제 결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다.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을 한 끼 먹은 것과 더불어 이번 추석 연휴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조용한 사찰과 북적이는 고궁을 다녀온 거다. 사찰은 추석날인 10일 충주에 있는 조계종 사찰 ‘석종사’에 다녀왔다. 원래는 그날 오랜만에 남산(금봉산) 정상에 오르려 했는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석종사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초행길이라 길을 잠시 잃어버리고, 늦더위의 강한 햇살에 잠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찰에 도착하니 그런 마음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석종사는 통일신라시절 창건한 사찰인데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허물어졌다가 198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그래서 사찰이 고풍스러운 느낌보다는 깔끔한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위치가 좋아 잠시 둘러봐도 마음이 편안해져 자연스럽게 정화되는 기운을 느꼈다.     


이튿날에는 서울에 올라가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종묘를 둘러봤다. 방송에서 봤던 창경궁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게 목적이었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그 길은 막혀있었다. 게다가 종묘의 정전도 보수공사 중이어서 적잖이 실망했지만 오랜만에 고궁을 걷는 일이 나쁘지 않아 그걸로 위안을 받았다. 사실, 이날 고궁 산책은 사람 구경이라 해도 다름 아니었다. 특히 외국인들이 고궁을 보러 오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다. 영어를 비롯해 프랑스어와 동남아시아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들리는 곳에 있으니 서울은 이제 정말 국제화된 도시구나 하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그러면서 영어를 반드시 공부해 익혀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뭐, 결과적으로 내 학습 의욕을 키워준 산책이었군.



이와 함께 연휴 기간 영화 ‘엘비스’와 ‘미지와의 조우’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봤다. 특히 수리남은 꽤 재미있게 봤다. 역시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은 뛰어난 것 같다. 배울 점이 많았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난 큰 목표를 위해 내일부터 더 분주히 움직이게 될 것이다. 먼저 단편영화 촬영을 위해 3주 동안 바쁘게 살아갈 것이고, 그러면서 대학원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과 학업계획서, 트리트먼트 집필에도 시간을 내야 한다. 거기다가 JLPT 3급 시험도 보기로 했으니 일본어와 영어 공부도 해야겠지. 물론, 일을 하면서 해야 한다.

내가 봐도 가능할까 싶은데, 또 못 할 일도 아니다. 연휴 기간 푹 쉬었으니 지금부터 움직이면 되는 거잖아?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먹지 말자.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은 보게 돼 있으니.

그럼 다시 힘을 내 열심히 살아보자. 이제 9월도 중순이다. 그럼에도 아직 2022년은 3개월이 넘게 남았으니 지금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후회하지 않도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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