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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Sep 26. 2022

마흔 하나, 영화 만들기 좋은 나이

6. 원점. 

글을 쓰지 않은 지 한 달이 됐다. 금세 지나간 것도 같고, 많은 일이 있던 것도 같다. 중요한 건 지금, 이렇게 다시 글을 쓰면서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볼품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극복하면서 기어이 왔다는 점에 있어 스스로 큰 자긍심을 느낀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고 실제로 포기하려 했지만, 나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음으로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있던 일을 간단히 돌아볼까?

우선 고민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사실은 조금 욱하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지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단편 제작 워크숍을 중도 하차한 후 나는 독자적인 길을 가기로 했다. 우선 몸과 마음이 지친 내게 휴식을 줘야 할 것 같아 촬영을 한 달 미루고 지인의 도움으로 촬영감독과 PD를 고용했다. 

8월 말, 우선 다가오는 추석 연휴를 잘 보낸 뒤 연휴가 끝나고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배우와 스텝 등 함께 해주기로 한 이들에게 연락을 한 후, 나는 다시 관계로부터 멀어져 혼자가 됐다. 혼자가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영화 따위 잊고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조용히 살자고 생각하니 관계로 인해 상처받았던 내면이 다시 치유되는 걸 느꼈다. 또 그동안 잊고 있던 소소한 내 일상의 관계가 새삼 소중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상처를 치유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갔고, 고향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푹 쉬면서 쓰라린 내 상처는 아물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란 단연 서운함이다. 그리고 이제 와 생각해보면 서운함과 연결된 질투심인 것 같다. 지금이야 상대를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은 사라졌지만 하필이면 왜 나였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아있다. 운이 없던 거지. 나와 결이 맞는 이들을 만난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직접적인 원인은 같은 조의 한 친구가 내게 전화를 건 일이었다. 내가 자신의 촬영 현장에서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는 그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며 결국엔 사과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서로 자기 얘기만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이어진 문자를 통해 그 친구는 내가 부탁한 역할을 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뜻을 밝혔고, 난 아마 여기서 그동안 느꼈던 서운함이 폭발했던 것 같다.


그냥 사람 좋게 ‘허허’ 웃어넘기며 끝까지 워크숍 과정을 끝마치는 게 최선이었을까?

서운함이란 감정은 생각해보면 무서운 감정이다. 특히 나처럼 조금이라도 좋은 관계라 생각되면 초반부터 많은 걸 주려고 하는 입장에서는, 그에 따른 피드백이 없으면 서운함은 큰 상처로 남는다. 

워크숍 과정 내내 그런 감정은 조금씩 쌓여갔다. 그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폭발한 것이기에 지금 생각해도 워크숍 과정을 끝마치는 게 최선을 아니었다는 판단이 든다. 

이 상처는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얻게 되는 건 결국 누가 내 곁에 남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미 나와 오래 이어질 인연이 아니라면 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이미 워크숍 과정과 만났던 사람들, 미련 등을 모두 털어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워크숍에 할애한 시간과 돈이 아까웠지만, 이 또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 생각하고 덤덤히 받아들였다.



물론, 워크숍에서 만난 이들 중에서 아쉬운 인연도 있었다. 추석 연휴 기간 내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줬던 분이 있다. 나와 같은 조가 아니어서 얘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지만 내 작품을 좋게 보고 응원해준 분이다. 그분 또한 나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는 말을 남겼는데 나 또한 그랬다.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또 함께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지만 작은 배려와 관심만으로 힘이 되는 존재도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꽤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인연이라는 건, 관계라는 건 잘 모르겠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나는 다시 단편영화 제작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새로 구성된 스텝과 줌 회의를 하고, 주말에는 직접 만나서 식사도 하고, 영화 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 지난주에는 직접 촬영 현장을 둘러보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필요한 촬영 장비 등을 점검했다. 이튿날에는 세종대학교에서 배우들과 만나 처음으로 대본 리딩을 진행했다. 확실히 전 배우들보다 느낌이 좋았다. 리딩도 무사히 마치고 저녁에는 스텝에 참여해주기로 한 지인을 만나 함께 술 한잔 기울이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지인과 헤어지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며 어찌 됐든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닐지 몰라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왔구나.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단편은 참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이제 정말 프리 프로덕션과 프로덕션까지 딱 일주일 남았다.     


일주일, 열심히 살아보자. 

끝나면 다시 후반 작업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또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면 된다. 


아, 에세이를 정리하는 일도 남았구나. 초고라 생각하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는데 촬영을 마치고 나면 조금이라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암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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