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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Apr 15. 2023

가자 가자 신군

끝내 극복할 수 없는 '벽'을 다시 확인하다

1980년 미국 진출 후 단숨에 시장을 석권한 소니(SONY)의 워크맨이 상징하듯 당시 일본은 무서울 게 없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특수로 전후 복구에 성공한 일본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 경제적으로 미국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경제 강국이 됐다는 자신감은 한 세대 전 제국주의 전쟁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이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과거의 잔인한 전쟁을 잊지 않고, 여전히 전쟁 속에서 살고 있는 오쿠자키 겐조는 정의를 위한 자신만의 또 다른 전쟁에 나선다.


하라 가즈오 감독의 영화 ‘천황의 군대는 전진한다’는 다큐멘터리 장르지만 극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극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참전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을 얻게 된 주인공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전쟁 속에 머물며 고통받는 ‘디어헌터’, ‘람보’, ‘하얀전쟁’ 등의 극영화가 생각났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파푸아뉴기니에 고립된 잔류부대 내에서 발생한 부하 총살 처형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주인공이 사건에 관여했던 이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이소룡류 영화의 ‘도장 깨기’를 연상시킨다. 마지막에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코시미즈 대위가 등장할 땐 나름의 반전도 숨기고 있다. 이 반전은 곧 끝판왕의 교활한 거짓이라는 게 밝혀지고, 그로 인해 영화의 결말은 더욱 극적으로 완성된다. 여기에 멀리서 주인공의 차량을 따라가는 시선이나 희생자 어머니의 구슬픈 노래, 경쾌한 일본 전통 타악기 소리 등은 주인공의 행위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한다.

이처럼 영화는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극적으로 구성해 끝까지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지점에서 감독의 역량이 드러난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형식과 본질에 있어 다큐란 단순히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찍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다큐가 되기 위해서는 사실과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게 극적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이 영화를 통해 역설한다. 


이 영화를 보며 한 가지 궁금한 점도 있었는데 그건 다큐 속 인물의 행동에 카메라가(연출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영화에서 오쿠자키 겐조는 감정적으로 흥분한 모습과 거친 행동을 자주 보여준다.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가해자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참회했다는 가해자 말에 격분해 폭력을 사용하고, 희생자 장병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는 서러운 눈물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런 행동이 과연 카메라가 없을 때도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인물에게 연기나 행동에 관한 지시를 내리진 않았겠지만, 카메라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물은 이를 의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또는 보다 극적으로 행동을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인물의 진실한 행동인가? 이런 면에서 다큐 속 인물의 행동과 말이 얼마나 평상시와 같은가, 과연 같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다큐란 특정 인물의 구체적 모습을 찍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어떤 보편성을 확보했는가? 

오쿠자키 겐조는 당시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특별한 인물을 조명해 감독이 관객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보편성은 무엇일까? 체제투쟁의 실패와 경제성장에 따른 우경화, 그로 인한 전범 책임의 망각 속에도 일본에는 여전히 오쿠자키 겐조처럼 양심 있는 인물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흥미로운 인물이기에 기록하려는 욕구로 만든 것일까?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지만, 그릇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진실을 밝힐 열쇠를 쥔 가해자들은 과거는 그냥 묻어두자고 쉽게 말하거나 아니면 거짓으로 진실을 훼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쿠자키 겐조처럼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쿠자키 겐조가 진실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과거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화합과 용서는 진실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암울했던 역사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쿠자키 겐조의 특별한 행동을 통해 역사적 상처의 치유를 위해 온전한 진실이 필요하다는 보편성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그럼에도 오쿠자키 겐조라는 인물에는 끝까지 동일시될 수 없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한다. ‘국가는 사람 사이의 벽’이라고. 그와 나 사이에는 엄연히 대한민국과 일본이라는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시 뉴기니의 정글에 혹시 조선인 병사와 징용자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쿠자키 겐조는 이 ‘불령선인’ 전우가 있었다면 이들에게는 어떤 대접을 했고,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또 만일 실제로 조선인 병사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잡아먹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못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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