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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Apr 16. 2023

이야기를 만들자

Self-Portrait. 2023년 4월 16일 일요일, 미세 먼지.

요즘 내가 일기를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오늘 문득 깨달았다. 이달은 지난 3일에 일기를 쓰고 오늘이 두 번째 일기다. 3일 일기에는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청와대 구경을 다녀온 얘기가 적혀있었다. 이후 오늘까지 13일 동안 기록할만한 일이 별로 없던 걸까?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일은 없던 것 같다. 아마도 대학원 과제 하느라 여유가 좀 없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진 내포에서 일하고, 목요일은 대학원 수업 듣고, 금요일부터 일요일은 과제하느라 일기를 쓰겠다는 생각은 잠시 잊고 있었다.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조금 부끄럽긴 하다. 그렇지만 오늘은 지난 12일의 날들과는 달랐다. 오늘은 꼭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아침부터 들었고, 충주에서 대전을 거쳐 내포로 내려와 방 청소와 빨래를 하고, 저녁까지 먹은 후 새로운 한 주를 머릿속에 그려보기 전에 이렇게 이 글을 쓴다.     


오늘은 꼭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오늘이 그저 평범한 날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9년 전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었다. 벌써 9년이 흘렀고, 공교롭게도 9명의 희생자는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국 곳곳에서 추념식이 열리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간이 마련됐는데 나는 이 9명의 희생자를 다시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기억하는 일뿐이니까.


기억한다는 건 물론 소중한 행위지만 한편으로는 기억밖에 할 수 없는 내 존재가 마냥 초라해 보여 화가 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었더라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면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무언가를 했을 텐데. 또 그러고 싶었는데. 

9년 전이나 지금이나 힘이 없으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난 그저 운이 좋아 이렇게 살아남은 것뿐인데. 우리 가족도 그렇고 내 이웃도 그렇고, 나를 둘러싼 인연들 모두 그저 운이 좋아 침몰하는 배에 타지 않았고, 사람들이 몰린 곳에 가지 않았고, 불이 나는 지역에 살지 않았던 것뿐인데. 

평생 이렇게 안전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때문에 안전한 생활을 누릴 권리를 지켜야 하고,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행동을 통해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혼자가 힘들면 함께 힘을 모아 이뤄야 하는 것인데.

아직,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왜 누군가는 지겹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진실이 아닌 거짓을 퍼뜨리는 것인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절망만 하지 말고 조만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일 열심히 살아야겠다. 지금 내가 도전하고 있는 이 과정도 분명 내 영향력을 키우는 데 기여를 할 것이라 믿기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완수하자. 그리고 완수해 나가는 과정 동안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는 이야기를 만들자.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이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고를 통해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자. 

그건 그래도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6년 전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당시에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 주말 당직을 마치고 버스를 타러 경복궁역으로 향하면서 참여연대 건물에 조성된 이 대형 리본을 보고 사진을 찍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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