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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lue sky Oct 16. 2021

편안한 죽음

동물 안락사,  좋은 죽음이란 없다

동물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 <좋은 죽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란

불치의 중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 및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동물에 대하여

직·간접적 방법으로 생물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자기 결정권이 없는 반려동물에게 있어 안락사는 사람이 결정하기에 타의적이다.

반면, 시행자인 수의사는 독극물을 투입해 생명유지의 의무를 반하는 행위를 하기에 적극적 관점을 가진다.

수의사로서 항상 생명을 살리고 병을 치유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반려동물을 대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수의사의 역할 중 하나다.

안락사에 대한 정의는 사람의 안락사와 그 의미는 대동소이하나, 느끼는 무게감에서는 차이가 크다.

즉 동물 안락사를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고, 유기동물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도 너무나도

쉽게 실행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전화기 너머 메마른 목소리로 특별한 이유 없이 안락사를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고, 치료 가능한 질병에 대해서는 안락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전화를 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항상 기분이 찜찜하다.


우리나라 인구 중 1/5인 1000만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현시점에서, 진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살아있는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수의사뿐 아니라 일반인의 시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전화상으로 문의하지도 않고 길에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 과연 어떤 사람을 더

나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며칠 전, 점심시간을 조금 넘어 빨래판에 얇은 내의를 얹어 놓은 듯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허벅지는 말라서 바람이 불면 털 사이로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진돗개 한 마리와

순하게 생긴 안경 쓴 청년이 병원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부터 밥을 먹지를 않네요, 기침도 하고.”

보통의 나이 든 진돗개는 주인 이외에는 손을 타지 않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가끔 수의사가 진돗개를 진료하다가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놈은 원래 순한 것인지 진짜 힘이 없는 것인지 만져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침 수술 준비를 하고 있던 터여서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요청에 묵묵히 기다리는 청년.

뭔가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시작된 검사.

그냥 단순 감기면 했는데, 전염성 호흡기 질병인 홍역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심장사상충 성충 감염까지.

청년은 직감적으로 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진료실에서 대기하는 보호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치료과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청년은 긴 한숨이 멎은 후에도 한참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락사해주세요.”


왜 안락사를 결정했냐고 물으니,

홍역이 쉽게 치료되는 질병이냐고 도리어 묻는다.

홍역은 치료도 어렵고, 어렵게 고친다 해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고, 또 고쳐진 뒤에도 심장사상충 감염 치료를 해야 되는데 그럴 만큼의 경제적인 능력도 심적인 여유도 없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절대로 안락사를 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치료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호자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의 경제적, 심적 여유의 문제가 아니라 이 병든 개의 어린 강아지들 때문이었다.

이 개가 지내는 공장에는 같이 살고 있는 큰 개가 2마리 더 있고, 태어난 지 5일이 갓 넘은 어린

새끼도 3마리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린 강아지들의 아빠가 바로 전염병에 걸린 진돗개였다.

치료를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다른 동거견에게 전염이 될 가능성이 높고, 어린 강아지에게

전염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희생하듯, 안락사의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주사용 약물을 뽑아서 안락사할 준비를 했다.


검사를 할 때는 그렇게 쉽게 앞다리를 내밀더니 뭘 아는 것처럼 내 손을 이리저리 피한다.

그 빠져나가는 다리를 잡는 순간 진돗개의 가늘고 힘없는 눈과 마주쳤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널 죽이려 네 다리를 잡는구나…’


주사 주입용 카테터 장착 후 마취제를 투여하고, 보호자에게 마지막으로 확인을 했다.

“이제 주사해도 될까요?”

“네”

짧은 대답 후 정적이 흐른다.

주사제가 들어가자 보일 듯 말듯한 한 번의 몸부림.

그 몸부림을 안경 쓴 청년은 온몸으로 껴안았다.

마치 그 개가 느끼는 죽음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듯이, 진돗개를 안고 있는 청년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어깨는 약하게 흔들렸다.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결정해야 하는 보호자의 무거운 마음이 내게도 느껴졌고,

그 모습 앞에 나는 아무 말없이 티슈만 책상 위에 둔 채 어떤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락사를 행하고 나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진다.

마치 흰 화선지에 검은 먹물 한 방울이 번져서 한동안 그 검은 퍼짐이 빠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다시 몇 번의 날이 지나면 검은 먹물이 빠져서 다시 희게 되듯이,

그 기억도 잊히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 있다.


‘생명은 항상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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