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로드 ' 난 청하가 좋아'
사람은 술을 마신 다음 두통, 어지럼, 구토, 속 쓰림 등의 숙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강아지도 술을 마시면 숙취가 나타날까?
토요일 오후 즈음에 만화 ‘바우와우’의 주인공인 불테리어가 보호자에게 안겨서 병원 문을 들어섰다.
불테리어(Bull Terrier)는 불도그와 화이트 잉글리시 테리어를 교배하여 개량한 몸집이
중간 크기인 개로,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는 에너지가 넘치는 종이다.
그런데 보호자 품에 안긴 불테리어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것이 응급 상태인 것 같았다.
게다가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호자에게서 약간의 술 냄새도 났다.
‘ 아~ 얼마나 급한 상황이면 술을 마시다 말고 강아지를 안고 운전을 해서 왔을까!!’
‘이렇게 음주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하는 짧은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먼저 처치실로 옮기게 해서 강아지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 의식도 거의 없고 몸도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신경계에 큰 문제가 생겼나? ’하고
생각을 할 때, 이상하게도 보호자가 없는데도 어디에선가 술 냄새가 계속 나는 것이었다.
‘보호자가 술을 많이 마셔서 안고 오는 동안 강아지에게 냄새가 스며들었나 보다’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강아지를 집중치료실에 입원시키고 난 뒤, 진료실에서 보호자와
치료를 위해 진료상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술 냄새가 나야 할 보호자에게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자 보호자가 이상하게 한번 쳐다보고는
“ 외출하고 다녀오니 로드가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더라고요,
옆에 구토한 흔적도 있고
이상하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그리고 로드 옆에 술병이 있었어요”
"술병이요?"
"예!! 어제 청하를 조금 마시고 방에 두고 나갔는데,
다녀오니 애는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술은 하나도 안 남아있고....
아무래도 술을 마신 것 같아요 “
이제야 술 냄새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고, 모든 의문이 풀렸다.
집중치료실에 큰 팔자로 누워있는 술 취한 불테리어 ‘로드’.
옆으로 누운 ‘로드’는 마치 술주정이라도 하듯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조금씩 지르고,
한 번씩 다리도 흔들었다.
입원장 문을 여니 술 냄새가 확 풍긴다.
‘로드’ 입에 코를 가져다 대니 마치 술에 취해 집에 온 아빠가 잠자고 있는 딸아이 코에다
술 냄새를 풍기듯이, 내 코에 ‘ 하아’ 하고 숨을 내쉬는데...
진한 술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로드는 청하를 마실 때 사료를 안주 삼아 먹었을까?
아님 육포 간식을 안주삼아 먹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니,
술주정을 하는 ‘로드’ 치료를 하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몇 시간의 수액과 약물투여 후 ‘로드’는 꼬리를 흔들고 고개를 조금 이기며
사람과 눈 맞춤도 하였다.
의식이 돌아온 아니 술이 깬 ‘로드’는 보호자의 품에 안겨 병원 문을 나섰다.
“ 아마 집에 도착해서는 정상으로 돌아 올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병원 문을 닫으려는 보호자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더했다.
“먹고 남은 청하는 꼭 냉장고에 보관하세요.”
보호자도 농담인 듯 진담인 내 말에 웃음을 지으며 ‘로드’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술에서 깬 ‘로드’는 숙취 없이 정상 컨디션을 찾았다고 한다.
어쩌면 보호자는 약간 취해 있는 로드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