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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lue sky Nov 28. 2021

노루가 준 부적

노루가 설사하면 수의사는 머리가 아프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신년운세를 보기 위해서 토정비결을 보거나, 아니면  여성 잡지에 나오는 올해의 운세와 별자리 등을  찾아보며 한해의 운을 알아보기도 한다.  

어떤 이는 미신이니, 그런  믿을 시간에 자기 계발하여 현실에 충실하면  좋은 삶을   있다고 하나,  이것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  하나라고 보면 그렇게 비난할 것은 아닌듯하다.  


미신은 문화와 밀접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길조인 까치가 일본에서는 흉조이고, 우리나라 흉조인 까마귀가 일본에서는 길조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살던 고향인 경북 팔공산 자락은 농사를 짓는 시골이어서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동네 남자들은, 토끼, 꿩, 노루 등의 산짐승을 잡는 것이 여가활동이며,

겨울을 즐겁게 나는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항상 다른 짐승은 몰라도 노루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하셨다.

노루를 잡으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진짜로 그런 일이 선대에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런 이유에서 노루는 잡지 않으셨다.  

그래서 여름 장마철에 간혹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 오는 노루를 구해서 산으로 다시 놓아주기도 하고, 산에서 덫에 걸린  노루를 풀어주곤 하셨다.

그럼 동네 사람들은 아깝게  그냥 풀어 주냐며 아쉬워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렇게 해야지만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고향집에는 ‘솔’이라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었다.

 ‘솔’이는 아버지와 뒷산에 종종 산책을 가곤 하는데, 한 번은 ‘솔’이가 산책 도중 갑자기 쏜살같이 산속으로 뛰어들어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 20여 분이 지난 뒤 ‘솔’이는 아버지 앞으로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수사자가 영양 한 마리를 물고 나오는 한 장면처럼,

큼지막한 노루 한 마리를 물고 자랑스럽게 나타났다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깜짝 놀라 얼른 노루를 물고 있던 ‘솔’이의 입을 열었고, 다행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노루를 다시 산으로 풀어주셨다고 한다.

가끔 ‘이가 , 토끼를 물고 오는 날에는 맛있게 요리해서 드시기도 했던 아버지는 노루에 대한 관념만큼은 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으셨다.  


‘내림’은 아니지만 나도 당연히 노루를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유전자에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비가 온 뒤의 봄이었다.

인근 산에서 발견된 어린 노루를  집에서 키우다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데리고 왔다며, 아저씨와 어린 여자아이가 힘없이 설사를 하는 어린 노루를 안고 내원했다.

야생동물 구조센터가 따로  운영이 되고 있지만, 이렇게 집에서 부득이하게 키우는 경우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노루의  상태가 상당히 나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입원한 다음날 오전 녀석은 치료 도중 갑자기 숨을  거둬버리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루에 대한 미신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어릴 때 이야기인 데다, 요즘은 산에서 노루 보기도 흔하지 않고, 또 계속 도시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잊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노루에 대한 미신을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입원한 강아지의 처치를 마치고 입원 케이지 가까이에서  일어서는 순간, 머리에 뭔가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번개를 맞은 듯 순간적으로 일더니,

얼굴 아래로 뭔가 따뜻한 것이 흘러내렸다.

오른쪽 머리 부위를 입원 케이지의 문 모서리에 찧어서 10cm 정도 찢어진 것이었다.  

얼른 거즈로 압박하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서 봉합을   다시 병원에 와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그제야 어제 죽은  노루가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내가 살리지 못하고 죽게 만들어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동료들은 수의사로서 동물의 죽음을 맞닥뜨리는  것은 피할 수 없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며 위로해 주었지만,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자리 잡힌 노루에 대한  미신은 가시지 않았다.

 

‘만약 내가 치료를 잘해서 살렸다면 머리를 다치지 않았을까?’하는

가리사니 없는 생각을 나는 떨쳐버릴  수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노루에 대한 생각.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맘도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비로 개별 화장을 하여 유골함을 보호자에게 드렸다.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세요”라며 부탁까지 하며 말이다.

보호자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렇게 해야지만 내 맘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그날의 흔적이 작은 선으로 머리에 남아있지만

죽은 노루의 명복을 빌며 화장까지 해준 정성이 통해서인지

 이후 병원에서 작은 사고 없이  건강하게 진료를 보며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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