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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lue sky Dec 09. 2021

층간 , 아니 층견 소음

행복이는 행복했을까?


 


일요일 진료는 없지만  토토와 산책 겸 병원에 들러 미루어 두었던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울리는 전화.
이전에 요도결석 제거 수술 때문에  치료를 받았던 강아지의 보호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급하게 진료를 봤으면 하는 강아지가 있다는 것이다.

 
병원 안으로 하얀색 몰티즈를 안고  들어온 보호자와 낯선  남자분.
갈비뼈는 앙상하고 배는 빵빵하게 불러있는 것이  몸이 좋지 않음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원장님 오늘 집안 잔치하는데 중간에 몰래 나왔어요. ‘행복이’ 진료받으려고...”

“ 강아지 안 키우는 사람들이  들으면 욕해요 , 잔치 중에 강아지 치료받으려고 나왔다고 하면”


‘행복이’는 전화 통화한 보호자의 남동생이 기르는 강아지인데,

집안잔치에 만난 오누이가 여러 안부를 묻던 중, 우연히 ‘행복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유하며 내원했다는 것이다.


품종은 몰티즈로 나이는 7 , 이름은 ‘행복이

 ‘행복이 이름과는 다르게,  다른 병원에서 복수를 제거와 약을 먹으며 행복하지 않은

치료과정을 한 달 넘게 받고 있다고 했다.


잇몸과 복부에 노란색의 황달.
간에 관련된 여러 부분에 문제가 있음이 혈액 검사상 확인되었고,

알부민 수치도 매우 낮은 상태로  나왔다.


이런  ‘행복이’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하는 층간소음의 불화로 생기는 사건 사고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강아지의 짖는 소리 때문에 발생하는 이웃 간의 문제로 ‘ 층견소음’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교정, 보조기구 착용,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내거나 ,

 전체가 이웃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 해결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성대 수술.

즉 짖어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수술이다.


성대 수술은  보호자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측면이 있지만 ,

외국에서도 유기나 안락사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강아지가 반려동물로 사람의 영역 내에서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생긴 수술인 것이다.


그래서 수의사나 보호자 모두  번의 고민을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결정하기까지는 심적인 고통이 크지만

수술 후 보호자의 만족도가  최고인 수술이 성대 수술이다.


“ 원장님 이제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어요. 이웃들에게 안 미안하고,

  예전엔  경비실 인터폰만  울려도 가슴이 벌렁벌렁했는데…”

이럴  알았으면 진작에 미안해하지 말고 수술할걸 그랬어요

   맨날   스트레스받고   야단치고….”



‘행복이’도  층간소음의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행복이’의  짖는 소리 때문에 아래층의 잦은 항의가 발생하였고,

보호자는 고민 끝에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깨끗이 미용을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행복이’를 보내야 한다는 괴로움을 달래려 술을 얼큰하게 마신 후,

행복이를 앞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마치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설명하듯이,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행복이 다른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술주정에 신세한탄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 끝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마치 보호자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예전에는 그렇게 짖던 행복이가
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떠나보내는 슬픔에 강아지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는데

진심이 통해서일까?


그 이후 아래층에서는 전혀 행복이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일반 방사선 촬영  안에 이물로 의심되었던 것도 

조영촬영 결과 위가 아닌 만성 간염으로 인한  실질의 문제로 확인이 되었다.

쉽게 말해 간의 일부가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간이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성간염의  증상이 위중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하자 보호자는 잠시 밖에 다녀온다며 나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진료실로 들어온 보호자.
몸에는 아직도 진하게 베여있는 담배냄새....


“한참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네요...”


‘행복이’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괴로움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끔 하는 것이었다.
보호자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담배냄새의 진한 여운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보호자의 말귀도 알아듣는 영특한 ‘행복이

 보호자와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갑작스러운 질병에 그 행복을 마감하고 말았다.


삶의 마지막엔 ‘행복이’를 힘들게 하는 병마가 있었지만, 끝까지 곁을 지켜준 보호자 때문에

‘행복이’는 행복한 삶을 추억하며 두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내 생(生)은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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