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식인
식인
가짜 뉴스였다. 인류 역사를 비도덕, 비인간적인 오류의 역사로 바꿔놓은 치명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 시작은 이렇다. 소앤틸리스제도 과들루프섬에 콜럼버스의 선원들이 상륙했다. 이 섬 이름 과들루프도 콜럼버스가 이때 스페인 과들루프의 성모 마리아 성지 이름을 따 붙인 이름이다. 선원들이 숲에서 사금을 찾다 6일간이나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을 기다리는 차에 콜럼버스는 다이노 가이드에게 전해 들은 바 있는 이 섬사람들을 조사하기 위해 뭍에 배를 댔다.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가니바Caniba’, 또는 ‘가니마Canima’라고 하는 자들을 매우 무서워했다.” 다이노 가이드는 그들을 ‘가리배Caribe’이라 했다. ‘가리배’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주 무서운 놈들’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콜럼버스는 건장한 젊은 남자의 벗은 몸에 난 흉터를 보고 왜 생긴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다른 부족이 침략해 와 싸우다가 생긴 자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해 아주 싫어하는 표정을 하며 “갈리나Kalina” 또는 “갈린나고Kalinago”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리배’는 사람의 살을 먹는다는 듯 흉내를 냈다. 콜럼버스는 ‘가리배’를 ‘가리브’로 바꿔 불렀다. 유럽에서는 기독교도와 모슬렘, 또는 기독교도와 기독교도끼리 돈과 땅을 탐하는 전쟁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황금을 찾아 이곳까지 온 콜럼버스였다. 그가 그때 원주민에게 들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콜럼버스 자신도 원주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았다. 콜럼버스는 가리브가 “그레이트 칸의 부하들이 틀림없다. 그레이트 칸은 바로, 이 근처에 있다.”라고 적었다. 콜럼버스는 가리브라는 사나운 이웃 부족이 다이노족 영역으로 계속 진출하면서 다이노족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약탈하는 적대 관계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그레이트 칸’이 가타이 즉 중국 황제라고 판단했다.
인류학자들은 가리배 또는 카리브족은 다이노족과 혈통과 언어가 서로 다른 민족이라고 확인했다. 베네수엘라와 아마존 일대에 현재도 사는 이들은 여전히 호전적인 성향이다. 다이노와 카리브족들은 분포한 섬도 서로 달랐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고만고만한 비슷한 섬일지라도 섬과 섬 사이에 서로 다른 민족 간 경계가 있었던 셈이다. 영토와 재물을 빼앗고 뺏기는 국지전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들은 “갈리나”, “갈린나고”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다이노족과 갈리나-가리배Kalina-Carib족과는 우호적이지 않은 관계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갈리나’는 다이노 가이드가 콜럼버스에게 카리브족에 대해 적대적으로 설명한 표현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던 차에 사체가 토막 난 채로 있는 장면이 콜럼버스 눈에 들어왔다.
1970년대에 인류학자들은 이 논란 많은 문제에 대한 결론을 지었다. 카리브 지역에서 인육을 먹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연구 결론이었다. 인육을 먹었다면 발굴된 사람의 뼈를 불에 그슬린 흔적이 있다든지, 뼈 주위에 칼이 있다든지, 하나의 시체에서 나온 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흔적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다이노들의 신앙에 주목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몸을 몇 조각으로 나누어 여기저기에 묻고, 그중 머리를 잘라 집안에 두어 해골만 남을 때까지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섬을 탐사하며 빈집에 들어가 보니 집집이 해골을 집안 높은 곳에 진열해 두고 있더라고 기록했다. 콜럼버스는 그것이 식인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문화 인류학자들은 그런 해골들은 다이노들의 제례 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살을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인 증거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오랫동안 기리기 위해 신체 일부를 집에 모셔두는 풍습이었다. 이 사람들은 혼이 들어있던 죽은 자의 머리를 그가 살던 집안에 두고 수시로 제사를 지냈다. 그들은 육신은 죽었어도 혼백은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한동안 머무르고, 그래서 황천으로 가는 길은 멀다고 생각했다. 이승의 생명은 저승에서도 이어진다고 바랐고, 먼저 간 아버지를 나중에 죽은 자식이 저승에서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난 조상과 이별하지 않고 오래 함께 살기 위해 죽은 이의 인골을 집안에 두고 제사를 지냈다. 죽은 후에도 가족들과 한동안 함께 살다 아주 떠난 뒤에는 저승에서 후손들을 돌보는 신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왕이 죽으면 돌로 무덤을 만들어 옮겨 묻었다. 피라미드를 쌓았다. 카리브해를 비롯한 아메리카 전역에서 다이노들은 피라미드를 쌓았다.
16세기에 도미니카에서 실제로 카리브족의 ‘식인’ 장면이 목격된 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두 부족 사이에 전투가 있었고, 한 명을 죽이고 두 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승리의 제물로 포로를 죽여 팔과 다리를 잘라 항아리에 담아 보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인류학자들은 포로를 잡은 이들이 포로를 인신 공양하여 제를 지낸 일이라고 했다. 식인을 한 일과 제례를 한 일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인류학자 윌리엄 키건William Keegan은 다이노 말 ‘가리배Caribe’에서 ‘카리브’라는 말이 변형되어 나왔다고 했다. 다이노 신화에서 ‘가리배Carib’는 저승 세계의 한 곳이다. 또 ‘가리배’는 ‘하늘의 다른 세상에서 내려와 죽은 자의 넋을 사후 세계로 데려가는 신’을 가리킨다고 했다. 저승사자인 셈이다. 이런 신화 체계를 알 리 없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리배’를 다이노들을 못살게 구는 종족이자 그들이 사는 실제 현실 공간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리배’를 ‘그레이트 칸의 사자people of Great Khan’라는 뜻이라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기록한 그레이트 칸은 가타이 즉 거란 황제를 말한다. 그러므로 콜럼버스에게 가리배는 가타이의 사신을 말한 것이었다. 반면 다이노가 말한 그레이트 칸은 저승의 왕, 우리식으로 말하면 염라대왕을 말하고 칸의 사자는 저승사자였다. 윌리엄 키건은 콜럼버스가 가리배를 ‘카니바Caniba’라는 단어로도 변용해서 썼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가리배, 카리브, 카니바’는 모두 같은 말이라고 했다. 복잡하지만 정리해 보면 이렇다. ‘가리배’는 저승, 또는 저승에서 온 사자라는 뜻을 가진 다이노 말이었다. 다이노들은 지긋지긋해서 이가 갈리는 아라왁족을 가리배 같은 놈들이라고 비유해 표현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가리배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사람의 목숨을 떼가는 저승사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육을 먹는 듯한 표정을 지어 가리배의 무서움을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가리배를 인육을 먹는 식인종 부족 이름이라고 잘못 알아들었고, 이들이 다이노를 공격한 부족이라고 오해했다. 그렇지만 다이노들은 또 콜럼버스를 가리켜서도 ‘가리배’라고 불렀다. 콜럼버스 일행을 저승에서 온 사자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윌리엄 키건은 다이노 언어 ‘먹는다eat’는 말에는 “없는 상태로 만든다consumed”는 이중의 뜻도 있다고 했다. 키건은 다이노들이 ‘가리배가 죽은 자의 생명을 먹는다eat’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가리배가 죽은 자의 넋을 빨아들인다consumed’라는 표현이라고 했다. 이런 표현을 콜럼버스는 ‘가리배 족이 진짜로 사람을 잡아 죽여서 그 살을 뜯어먹는다’라고 받아들였고,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실태라며 온 유럽에 퍼트렸다고 했다. 16세기 유럽에는 스페인 신부가 이들에게 잡아먹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스페인 왕실은 그때부터 카리브해에 도착할 때마다 염소 털로 짠 아주 질긴 포대를 뒤집어쓰고 배에서 내리게 했다. 그런 포대를 쓴 자를 카리브 식인종이 잡아먹어 보면 스페인 사람들의 살은 질기고 맛도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염소 포대를 뒤집어쓰지 않은 프랑스 놈들과 네덜란드 놈들의 살은 카리브족들이 부드럽고 맛있다고 느껴서 프랑스, 네덜란드인들의 살을 더 선호하게 되리라고도 생각했다. 금은을 실은 스페인 배를 약탈하는 해적들은 프랑스와 네덜란드 출신들이 많았다. 스페인은 그들을 이 갈려했다.
이런 괴담의 힘으로 콜럼버스의 ‘발견’ 소식은 더 빠르게 퍼졌다. 소문이 빠르게 퍼질수록 콜럼버스와 스페인 왕실, 교황청에 유리했다. 후글라르와 트로바도르는 이 소문을 유럽 전역에 퍼트린 개인 미디어들이었다. 아직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들은 극히 적었다. 후글라르들은 본디 과장하기 좋아했다. 흥행을 위해서는 그래야 유리했다. 이야기꾼들에게는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확 끌고 들어가 몰입시킬 수 있는 ‘후크’는 특히 긴요했다. 새로 발견한 땅의 카리브족들이 식인 한다는 이야기 소재는 정말로 충격적이고 참신한 ‘후크’였다. 마케팅에서는 ‘진실’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받아들여진 진실 perceived truth’이다.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 진실이다. 콜럼버스와 기독교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신세계 원주민은 야만의 식인종 이교도’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신세계에 가보지 않은 이들에게 식인종은 ‘받아들여진 진실’이 되었다. 아메리카의 모든 원주민을 스페인식으로 ‘카리발레스Caribales’족이라고 이름 붙였고, 영어를 쓰는 자들은 ‘카리브’라고 불렀다. 그러니 카리브해는 ‘식인종 카리브족이 사는 바다’라는 뜻이 되었다. 다이노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복종적이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했다. 그렇게 저항하고 싸우는 원주민을 일컬어 "사나운 식인종"이라는 의미로 ‘가니발레스Caníbales’라고도 불렀다. 쿠바 앞바다는 그때부터 “카리브해Caribbean Sea”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이름은 사람을 잡아 살을 뜯어먹는 식인종이 유럽인들을 공격하는 바다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유럽인들은 공포에 치를 떨었다. 품에 적의와 멸시를 가득 채웠다. 이 이름을 좋아하는 유럽인들도 있었다. 서유럽 바다와 지중해, 아프리카 연안을 떠돌던 해적들은 이 이름을 좋아했다. 해적들에게는 딱 맞는 콘셉트의 이름이었다. 해적들이 카리브해로 몰려들었다. 콜럼버스가 천국이라고 찬탄한 그렇게 아름다웠던 바다가 도적과 약탈, 강간, 살인 등 유럽인들의 온갖 악행이 허락된 무법천지의 바다가 되었다. 식민지 정복 초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대서양 쪽 모든 바다를 다 카리브해라고 했다. 그러다 아메리카가 무척 넓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 카리브해는 지금처럼 좁아졌다. 당시의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대화 소재는 ‘신세계’였다.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한 지 100년쯤 지난 1605년에 출간된 <돈키호테>에도 신세계는 벼락부자, 벼락 귀족이 될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표현되었다. 스페인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다. 희망의 땅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신세계를 언급할 때마다 유럽인들은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고, 식인이라는 야만성에 제 몸이 뜯기는 양 몸서리를 쳤다. 그때 유럽은 신의 자애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람을 산 채로 느리게 더 느리게 불태워 죽이는 데 열심이었다.
콜럼버스는 “그놈들 중에는 외눈박이도 있고, 머리는 개의 형상이고 몸통은 사람인 놈은 사람의 살을 뜯어먹는데, 사람을 잡자마자 목을 쳐서 피를 받아 마시고, 남자든 여자든 성기를 파먹는 것들”이라고 스페인 왕실에 보고했다. 머리는 개 몸통은 사람인 형상은 3세기 동방 비잔틴 교회의 여러 성화에 그려졌던 캐릭터다. 십자가를 들고 있는 개의 머리를 한 그 성인은 하필이면 “그리스도를 짊어져 옮긴 자”라는 성 크리스토퍼의 캐릭터였다. 이베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동방 세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캐릭터였다. 이집트의 그림에도 흔하게 있던 캐릭터였다. 그것을 콜럼버스는 자신이 카리브에서 직접 목격한 식인종의 모습으로 스페인 왕에게 보고했다. 콜럼버스가 항해 중에 여러 대의 카누에 나눠 탄 무리가 콜럼버스의 배를 공격했다. 아메리카인과 유럽인 사이에 발생한 첫 전투였다. 콜럼버스는 “그들이 용감하게 큰 활을 쏘아댔다”라고 항해 일지에 썼다. 콜럼버스는 그들도 가리배라고 기록했다. 인류학자들은 콜럼버스가 최초로 공격받은 이 지역은 다이노들이 사는 푸에르토리코였다고 규명했다. 그의 4차례 항로를 추적하면 콜럼버스는 한 번도 다이노의 적 ‘카리브’족이 사는 곳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실제로 카리브족으로 추정된 아라왁족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가 항해한 지역은 모두 다이노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다이노와 카리브는 서로 언어도 다르고 적대적인 사이였지만 콜럼버스는 이들의 세세한 차이를 분간할 수 없었다. 콜럼버스는 다이노 신화 속 존재인 ‘가리배’를 실제 존재하는 종족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을 공격하고 저항하는 모든 원주민을 ‘가리배’라고 분류했다. 그때부터 신세계에서 유럽인을 위협하는 자들은 모두 식인종이었고, 카리브족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 유럽인의 적은 식인종이었다. 식인종이므로 심문하여 불에 태워 죽여도 좋았고 노예로 삼아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비하하여 노예로 삼은 이데올로기 단어는 니그로. 카리브는 아메리카에서 원주민 학살과 노예 착취의 당위성을 만들어준 이데올로기 단어로 사용되었다.
1772년 프랑스 해적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해 주는 프랑스 신부가 콜롬비아 해안 바닷가를 돌아보고 나서 이런 일기를 썼다. 이 지역도 이사벨라 여왕이 원주민을 죄다 잡아서 노예로 팔고 약탈해도 좋다고 허가했던 곳이다. 이곳 원주민들도 카리브 식인종들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식인종이라면 이들이 지금 왜 식인하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사람의 살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이곳에서 직접 들어보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영국인들이 말하기로 이들은 늘 서로 전쟁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여기서든 베네수엘라에서든 이들끼리 서로 전쟁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사벨라 여왕은 카리브 땅의 다이노들도 자기 백성이므로 더는 노예로 삼지도, 매질하지도, 개라고 부르지도 말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503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포고령에는 예외가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들이 기승을 부린다면 잡아서 노예로 팔고 약탈해도 좋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포고령은 500년 동안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을 무한하게 노예로 삼고 약탈해도 좋다는 허가장으로 사용되었다.
셰익스피어도 유럽인. 그는 카리브 사람을 가리켜 칼리바Caliban이라고 썼다. 카니바Canniba를 철자 하나를 바꾸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썼다. “혐오스러운 노예 Abhorred slave / 신의 뜻이라고는 흔적 하나 묻지 않은 것들 Which any print of goodness wilt not take / 모든 죄악을 저지를 미물들 Being capable of all 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