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인디오
인디오
콜럼버스는 국왕 부부에게 거짓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가 다녀온 곳이 중국과 인도가 있는 아시아 대륙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인도로 가는 새 항로를 찾아낸 것으로 인식시키고자 했다. 그래야 지팡구와 중국뿐 아니라 인도에서 거둘 금은보화와 향신료, 노예 거래 수익이 모두 자신의 몫이 된다. 인도인지 인도가 아닌지는 차이가 컸다. 콜럼버스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시절 스페인에서는 인도 땅과 사람을 가리킬 때 “힌두Indu”라는 단어를 썼다. 자신이 다녀온 곳이 인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콜럼버스는 “인디오Indios”라는 단어를 썼다. “힌두”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티르가 인도라고 먼저 바람을 잡아 준 탓도 있었다. 이 말장난 같은 ‘브랜딩’으로 콜럼버스는 인도를 발견한 영웅이 되었다. 마티르와 콜럼버스의 의도로 중남미 원주민들은 인디오, 북미 원주민들은 인디언이 되어버렸다. 한참 시대가 지난 뒤에야 유럽인들은 진짜 인도는 아메리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릿속이 헝클어진 유럽인들은 진짜 인도를 유럽의 동쪽에 있는 인도 즉 동인도라고 불렀고, 콜럼버스가 거짓말로 둘러댄 가짜 인도를 유럽의 서쪽에 있는 인도라며 서인도라고 불렀다. 지금은 인도를 동인도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아직도 카리브 지역을 서인도제도라는 제국주의적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카리브 세계가 아직도 제국주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칭이다. 실제로 서인도제도는 여전히 영국령, 프랑스령, 네덜란드령, 미국령이 있다.
7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설이 하나 생겨났다. 모슬렘이 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에 쳐들어왔을 때 일이다. 모슬렘을 피해 고트족 히스파니아 주교 7명이 대서양 서쪽으로 도망쳐 숨었다. 그들이 일곱 개의 섬을 찾았고 그 섬마다 주교들이 숨어 본국과 인연을 끊고 기독교를 믿으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대서양 서쪽 저편에 7개의 섬으로 된 앤틸리야Antillia 전설이다. 앤틸리스 Antilles는 허풍선이 맨더빌 경의 소설에도 등장했다. 그런 이유로 중세에 제작된 지도에는 카나리아와 인도 사이에 앤틸리스 섬들이 그려져 있었다. 콜럼버스가 1차 항해를 마치고 되돌아온 뒤로 스페인 사람들은 콜럼버스가 6개의 섬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그 섬들이 전설의 일곱 섬이라며 무척 들떴다. 그리고 그곳을 앤틸리아Antilia라고 불렀다.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자메이카 같은 큰 섬들을 대앤틸리스제도라고 하고, 베네수엘라 쪽으로 점점이 작게 징검다리처럼 이어진 섬들을 소앤틸리스제도라고 구분한다.
카리브라는 이름에도 역시 인종차별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도 본디 그 땅의 주인인 다이노의 말에서 따왔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다르다. 서인도제도, 앤틸리스 제도, 카리브. 이 지역을 가리키는 세 가지 명칭 중에 가장 적합한 이름은 카리브일 것이다. 그나마 카리브는 유럽 제국주의 침략 이전에 수천 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를 담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