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98. 아메리칸드림

by 조이진

아메리칸드림

원주민들의 문명 수준이 낮다는 콜럼버스의 보고는 유럽과 백인, 그리고 기독교계에 오만함을 널리 퍼뜨렸다. 문명 수준이 낮다는 것은 곧 지능이 낮은 것. 마음껏 착취하고 노예로 부려 먹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했다.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사고방식은 종교재판으로 사람을 불태운 시체 연기에 섞여 유럽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피부 검은 자들에 이어, 새로 발견한 땅에 사는 피부 ‘노란 yellow’ 자들도 피부 검은 자들처럼 열등한 자들이며, 침략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강렬하게 뿌리내렸다. 콜럼버스의 입이 그 계기였다. 이후 500년간 인류사회를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넣은 식민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 그의 발견은 스페인에서, 포르투갈에서,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칸드림’을 형성했다. ‘탐험가’들과 ‘모험’ ‘도전정신’으로 포장된 ‘골드러시’로 유럽이 달아올랐다. 500년 전 그때도 아메리칸드림의 요체는 황금, 돈이었다. 콜럼버스는 그가 데려온 6명의 다이노를 스폰서에게 선물로 증정했다. 배에 태울 때는 다이노들과 맺은 친선의 상징이었으나, 배에서 내릴 때는 곧바로 노예 샘플로 전락했다. 성스러운 기독교 세계에 들여갈 것이니 배에서 내리기 전에 세례를 시켰다. 굳이 세례 문답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왕과 왕비, 그리고 그의 아주 어린 왕자가 이들 6명 다이노 성인들의 대부, 대모가 되었다. 그중 한 명은 왕실 궁정에 살다가 2년이 안 돼 죽었고, 다섯은 콜럼버스가 두 번째 항해 때 다시 카리브로 데려갔다. 그중에는 구가나가리가 외부 세계를 보고 오라고 스페인으로 가는 배에 태워 보낸 자가 1명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를 디에고 콜론Diego Colón으로 불렀다. 콜럼버스가 데려온 원주민이므로 그의 성을 붙였다. 노예들은 성을 모르므로 주인의 성을 붙이는 것이 유럽의 관행이었다. 성은 노예의 주인을 밝히는 표식이었다. 그가 스페인어를 배운 최초의 아메리카 사람이었고, 또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은 다이노였다. 그가 길잡이자 통역으로 2차 항해를 떠나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2차 항해하는 동안 쿠바섬에서 도주해 버렸다. 콜럼버스와 스페인 왕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황금을 바란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그만한 황금이 나는 곳을 그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Christopher-Columbus-map-of-the-world.png 콜럼버스가 항해 때 사용한 세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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