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기록
기록자
지도 제작자와 의사, 대여섯 명의 기록관도 끼어있었다. 그 속에 사제 라몬 파네Ramon Pané가 있었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다이노의 종교 등 생활상을 조사해 보고하는 일이었다. 그는 원주민들 사회에 파고들어 섞여 살았다. 그러면서 취재하고 인터뷰하여 알게 된 것을 <인디오 풍습 보고서>로 정리해 콜럼버스에게 보고했다. 파네의 보고서는 “내가 쓴 모든 문장은 원주민들이 진술한 말이다. 나는 단지 적었을 뿐이다…. 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완전한 진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모두 믿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가 아메리카 고유 언어를 배운 최초의 유럽인이자 아메리카 인에 관한 최초의 책을 쓴 인류학자였다. 젊은 라스 카사스Las Casas도 있었다. 그도 처음에는 여느 기독교인들처럼 잔혹한 ‘노예의 주인’이었다. 쿠바에서 다이노들을 대량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그는 스페인으로 되돌아가 사제가 되었다. 그 뒤로 쿠바에 다시 돌아와 ‘사람의 벗’이 되었다. 그도 스페인 국왕과 추기경에 보내는 보고서를 기록했다. 그가 직접 보고 경험한 기독교인들의 만행을 고발했다.
식민지 침공 초기에 스페인인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한 행위를 기록한 <인디오 파멸 보고서>다. 그는 스페인의 카리브 식민지 노예 착취 행태를 고발하여 ‘인디오의 보호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인간 도살자 오비에도Oviedo도 두 번째 항해에 승선했다. 오비에도는 어린 시절 스페인 왕위 계승권자인 후안 왕자의 벗이자 시종으로 성장했다. 이사벨라의 궁정에서 교육받은 귀족 유망주였다. 후안이 일찍 죽어버리자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다. 그때 이탈리아는 군사 외교 분야에 마키아벨리, 지리학과 예술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활동하던 시대다. 3년 유학을 마친 뒤 스페인 제국주의를 펼칠 구상을 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광범위한 식민지를 지배했던 로마 역사에서 배운 식민제국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히스파니올라에 왔다. 그는 잘 양성된 엘리트 식민지 지배자였다. 산토도밍고에서 금광과 용광로를 맡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이노가 죽었다.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스페인 왕은 산토도밍고에 큰 기념비를 세웠다. 그도 히스파니올라와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식민지로 정복하고 착취하면서 다이노들에 대해 기록했다. <인디오 이야기 Historia general y natural de Las Indias>도 스페인의 아메리카 침략 초기를 기록한 문서다. 라몬 파네, 라스 카사스, 오비에도가 남긴 기록물은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Diario>와 함께 1492년을 전후해 15세기, 16세기에 아메리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사료다. 이 기록물은 스페인이 파괴하기 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 생각 인문학적 정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자료들이 그때 살고 있었던 다이노들의 초상화다. 그리고 이들을 대면한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행동도 잘 드러나 있다. 이 네 권의 자료를 기록한 자들은 모두 아메리카 사회를 철저하게 파괴한 자들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작성한 기록물은 식민지 침략 초기 아메리카 사회 연구에 가장 중요한 자료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는 이것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