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베리아

1. 이베리아

#007 히스팔리스

by 조이진

히스팔리스

서기전 206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이베리아를 정복했다. 총독이 된 자신을 영원히 상징할 큰 도시를 세울만한 좋은 땅을 찾았다. 두루 돌아보니 페니키아인들 때부터 큰 도읍으로 써온 히스발Hisbaal이라는 땅이 좋았다. 그곳을 식민지 수도로 정하고 히스팔리스Hispalis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고쳐 불렀다. 히스발은 페니키아 말로 '낮은 땅'이라는 뜻으로 과달키비르강 강가에 있는 낮은 땅이다. 강 하구에 있어 식민모국 로마까지 물자를 실어 나르기에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강 입구에 있는 카디스와 아주 가까웠다. 뒷날 711년에 이슬람 우마야드 왕조가 스페인을 지배할 때 히스팔리스를 아랍 사람들의 말인 이쉬빌리야Ishbiliyah라는 이름으로 바꿨고, 800년 뒤 이슬람을 쫓아내고 기독교인들이 이베리아를 정복했을 때 세비야Sevilla로 살짝 이름을 바꾸었다. 페니키아와 로마, 이슬람과 기독교가 뒤섞인 혼혈의 도시 세비야는 이름 그 자체로 스페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압축했다. 땅을 다녀간 인간들은 땅의 이름에 지문을 남겼다.


로마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히스파니아라는 이름까지 더해주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히스파니아. 그때부터 600년 동안 로마가 이베리아를 지배했다. 로마는 그리스 사람들과는 달리 식민 도시를 건설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베리아의 주인 스키피오 히스파니아는 이베리아에 로마를 뛰어넘은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고 싶었다. 카르타고군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많은 로마 군인이 이베리아에 들어왔고 전쟁이 끝났으니 스키피오는 이들 로마 군인에게 정착할 곳을 마련해주어야 했다.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새로운 땅에서 지배자로서 살기 위해서였다. 전쟁은 그런 자들에게 신분을 상승할 기회의 공간이었다. 전투에 참여한 로마 시민들이 사는 곳이 소시에Socii다. 소시에에 사는 이들은 계급과 신분에 차이가 있기는 했어도 모두 승리한 시민이었고, 명예로운 로마인이었다. 대규모 도로망과 수도교, 원형경기장 등 로마식 소시에가 건설되었다. 로마 사람들의 말 라틴어가 이베리아에서 사용되었고, 본디 살고 있던 바스크, 켈트, 페니키아 사람들의 말들과 뒤섞였다. 이베리아의 라틴어는 로마 본토의 라틴어와는 꽤 달랐다. 말이 섞일 때 피도 섞였다.

산티포세 깃발


세비야 옆에 인구 7,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 산티포세Santipoce가 있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깃발은 이탈리아 국기와 같은 삼 색선이다. 다만 선들이 옆으로 뉘어 있는 점만 다르다. 깃발에는 ‘ITALICA’라고 쓰여있다. 스키피오 히스파니아가 로마식 식민도시를 이곳에 세운 뒤 이 도시를 이탈리카Itálica라 했다. 로마에서도 소시에에만 부칠 수 있는 이름이었다. 이 도시가 로마가 로마의 자부심을 담아 이탈리아 밖에 건설한 최초의 식민도시다. 스키피오는 로마와 아주 똑같게, 아니 그보다 더 화려하게 로마를 닮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지은 원형경기장은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히스파니아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다. 이 규모는 식민모국인 로마의 원형 경기장과도 작지 않은 크기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는 검투사끼리 칼싸움이나 맨주먹 권투 같은 걸 주로 했지만 로마를 넘어서고자 했던 히스파니아의 원형 경기장은 달랐다. 투창 던지기 같은 스포츠는 로마에서도 늘 볼 수 있는 흔한 것일 뿐이었다. 히스파니아의 주인 스키피오는 히스파니아를 완전히 새롭고 자극적인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제껏 로마에서는 볼 수 없던 이벤트가 이곳 원형 경기장에서는 늘 열렸다. 이곳에서는 검투사들이 사람과 싸우지 않고 사자, 표범 같은 아프리카 맹수들과 생과 사를 다퉈야 했다. 완전히 새로운 비주얼의 충격적인 이벤트였다. 대형 서커스가 수시로 공연되는 경기장은 드라마를 연기하는 극장이기도 했고, 음악 콘서트, 축제의 광장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떼로 모여 포도주를 마시고 흥청망청하는 곳이기도 했다. 자극적인 이탈리카는 분명 새로웠다. 로마 사람들은 포도주에 이베리아 산 꿀과 과일을 썰어 넣어 상그리아를 만들어 마셨다. 히스팔리스와 이탈리카는 1,500년 뒤 아바나에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해 주는 표징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환락 도시 세비야. 스페인은 그 세비야의 유전자를 잘 복제해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수도 아바나에 재현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세계를 지배했다. 세계를 경영하기 위해 법 체계도 필요했다. 로마법은 소시에에 속한 로마 시민을 대하는 법과 소시에를 위해 노동하는 피지배층을 다스리는 법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마법은 차별을 통한 식민 지배가 핵심이자 본질이었다. 로마법은 근대 유럽의 법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0여 년 뒤 식민 지배를 다투었던 독일, 영국, 일본 등 제국주의 유럽 국가에서 로마법은 표준이 되었다. 그 법의 정신을 따라 가혹한 식민 지배를 일삼은 일은 자연스러웠다. 히스파니아는 로마에 필요한 농산물을 공급했다. 밀, 포도주, 올리브유 같은 산물을 생산해 식민모국에 보냈다. 농사를 위해 숲을 베어내고 농경지로 만들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스페인의 포도밭이 이때 형성되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대규모 식민지 개발로 수천 년 유지해 온 농업 마을 공동체 형태의 켈티베리아 선주민 사회 기반은 소멸했다. 로마는 교육 체계와 문화를 스페인에 이식했다. 로마의 풍자 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is, 서사시인 루카누스Lucanus, 철학자 세네카Séneca 같은 로마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이베리아 출신이고, 또 히스파니아에 살던 로마인들이 라틴 문학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1212년 살라망카에는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이 세워졌다. 이것도 로마 교육 제도의 흔적이다.


+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배경이 되는 원형경기장이 이탈리카다.

+ 상그리아sangría는 스페인어 '붉은 피'를 뜻하는 상그리sangre에서 나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이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