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107. 딸네

by 조이진

딸네

아직 콜럼버스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가온아보는 섬 서쪽의 저라과Xaragua 가시관 비치오Behecchio와 혼인으로 맺은 동맹관계였다. 비치오 역시 뛰어나고 용맹한 가시관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라과 지역이 가장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의 아이티지역이다. 스페인군은 아직 비치오 가시관과 그가 다스리는 저라과 지역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라과에는 가시관 비치오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있었다. 두 남자를 동생과 남편으로 둔 여자 안아가온아Anacaona. 이 여인이 실질적인 이 섬의 최고 통치자였다. 두 남자를 통해 섬의 절반 이상을 통치했다. 다이노 사회는 모계사회였다. 모계사회는 가문과 혈통, 권력과 재산을 어머니 가문을 통해 상속하고 승계한다. 남자인 사위가 가시관 지위를 이었다. 또는 딸이 직접 가시관이 되기도 했다. 다이노 사람들은 어머니 가문을 일컬어 ‘딸네Talea’라고 하였다. 아버지 가문은 ‘종가Jonga’라 했다. 다이노 사회는 고누고를 모계를 통해 상속했다. 다이노 지배층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인 재미Zemís를 부계가 아닌 모계로 계승했다. 재미는 신정일치의 다이노 사회에서 가문과 왕권의 상징물이었다. 신분과 사회적 지위도 부계가 아닌 모계에 따라 결정되었다. 엄마의 오빠 즉 외삼촌이 갖은 왕권과 재산을 누이의 큰아들이 상속받았다. 안아가온아는 히스파니올라섬의 왕권과 토지 등의 상속 구도에서 모계사회의 중핵이었다.

안아가온아. 히스파니올라섬 모계 통치의 정점이었다.

바르톨로뮤 콜럼버스가 1495년에 공물을 바치라 요구했다. 매형인 가온아보가 생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비치오가 스페인군과 일전을 위해 군사를 움직였다. 비치오가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는 금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나눠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남은 해가 지나니 비치오 가시관과 안아가온아도 결국에는 스페인 정복자에게 공물을 내는 처지가 되었다. 비치오가 면이며, 옷감이며, 유가 같은 농산물을 공물로 바쳤다. 비치오가 전염병으로 죽었다. 안아가온아가 저라과의 통치자가 되었다. 안아가온아는 왕권과 신권을 상징하는 것들을 갖고 있었다. 두오duhos라는 가시관의 스툴을 만들고, 제기와 탕기 같은 제물을 관장하고 있었다. 옻칠한 듯 짙게 검은 나무로 만든 그릇들이었다. 제례에 필요한 수많은 복장도 관리하고 있었다. 모두 종묘사직에 제를 봉헌하는 물건들이다. 안아가온아가 14개의 두오를 바르톨로뮤 콜럼버스에게 보냈다. 다이노 귀족 사회에서 두오는 왕권과 그 정통성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의 동생이자 왕인 비치오는 농산물과 먹을거리를 공물로 보냈지만, 안아가온아는 다이노 사회에서 위상이 매우 중한 상징물들을 공물로 보낸 것이었다. 인류학자들은 이 같은 공물의 성격 차이가 다이노 사회에서 여성인 안아가온아의 위상이 남성이자 가시관인 비치오보다 더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본다. 안아가온아의 통치 기간도 얼마 가지 못했다. 1503년에 새로 이 섬의 식민 통치자가 된 오반도Ovando의 지휘 아래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오반도는 안아가온아가 히스파니올라섬 전체 다이노 사회의 최종 통치자라는 것을 알았다. 계략을 써서 그날 84명의 가시관을 소집했다. 안아가온아는 스페인 군사들에게 잔치를 열어 후한 음식을 제공하고 처녀들 300명에게 례도를 하게 했다. 스페인 군사들은 가시관들을 모두 안아가온아의 집에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 모두 태웠다. 밖으로 나온 자들은 찔렀다. 례도를 한 처녀 300명도 그렇게 죽였다. 안아가온아의 옷을 벗겼다. 농락했다. 그리고 목을 매달아 죽였다. 이 현장을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squez가 지휘했다. 이 학살의 공을 인정받은 벨라스케스는 저라과 지역을 통치하다 쿠바섬 정복군 사령관이 되었다. 벨라스케스가 쿠바에서 자행한 다이노 인종 학살이 어찌나 잔인했던지 정복군 라스 카사스가 회심하여 신부가 되었다. 라스 카사스는 이 사건으로 그가 인생을 “인디오 수호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백했다. 오반도는 1504년까지 히스파니올라의 다이노 사회를 철저하게 짓이겼다. 그리고 남아있는 모든 다이노 고유의 문화적 잔재들도 불태우고 부쉈다. 기독교의 것이 아니므로 모두 이단이고, 악마고, 사탄의 것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반도가 통치할 때 히스파니올라섬의 다이노들은 거의 죽었다. 같은 기간에 기독교인들도 많이 죽었다. 다이노 노동력이 없어졌으니 기독교인들은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었다. 이 시기에 엘미나에서는 더 많은 노예가 선적되고 있었다. 이제는 노예를 실은 갤리선이 적도를 넘어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를 향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실현되고 있었다. 히스파니올라에 아프리카인 노예들이 끌려왔다. 콜럼버스가 발을 디딘 지 약 10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기독교 국가 스페인이 또 다른 기독교 국가인 포르투갈로부터 노예를 사 왔다. 그것도 기독교도를 노예로 잡아 왔다. 포르투갈은 콩고 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후 엘 미나 주변 아프리카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기독교인들끼리는 노예 삼지 말라는 신의 명령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이 말씀을 폐기하도록 신의 명령을 관리하는 로마 교황청도 문제 삼지 않았다. 카리브에서 새로운 예루살렘 천년왕국은 그렇게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황금이 쏟아진 계곡 깊숙한 곳에 산토 토마스 요새를 세웠고, 기독교인 50명을 상주시켰다. 오헤다를 성주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 계곡을 ‘황금의 강Río de Oro’이라 불렀다. 다이노 마을 사람들을 모두 끌고 갔다. 어린아이도 끌고 갔고, 젖을 먹일 어미들도 데려갔다. 얕은 강줄기를 따라 사람들을 길게 줄 세워 몰아넣었다. 모두 허리 숙이고 엎드려 강바닥을 뒤졌다. 다이노들은 대나무껍질을 벗겨 바구니로 만들어 썼다. 다이노들은 그것을 ‘잡아jaba’라고 했다. 다이노들이 ‘잡아’를 잡고 체를 쳐서 사금을 채취했다. 콜롬비아, 볼리비아 같은 중앙아메리카에는 ‘황금의 강Río de Oro’이라는 이름이 곳곳에 여럿 남아있다. 이 이름은 모두 원주민들이 죽어가면서 기독교인들이 원하는 ‘잡아’를 잡고 황금을 캐던 곳이었다는 증거다. 인류의 가혹했던 흔적이 지문이 되어 남아있다.


이사벨라의 꿈을 위해 콜럼버스가 만든 라 이사벨라와 산토 토마스. 두 마을은 콜럼버스와 이사벨라가 신대륙을 찾아온 동기와 목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어떻게 경영할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오직 황금. 원주민들은 모두 그저 노예일 뿐이었다. 사고팔아 수익을 남기는 재화였을 뿐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첫 번째 골드러시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300년 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 골드러시의 모델이 되었다. 지금 라 이사벨라에는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인류학자들은 라 이사벨라에서 산토 토마스 마을까지 긴 루트에서 유해와 유물을 발굴했다. 유해를 조사한 결과 이곳 원주민들은 본래 멕시코에 살았던 이들과 같은 민족이었다고 확인했다. 이들이 다이노라는 점은 멕시코에 사는 원주민과 히스파니올라와 쿠바의 다이노가 같은 민족이었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유가가 많이 나는 땅이라는 뜻인 유카탄반도에 살았던 민족도 다이노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 콜럼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