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110. 세 번째 항해

by 조이진

영국의 북미 지역에 대한 권리와 영국 대서양 횡단 여행의 세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

세 번째 항해

두드려라. 열리리라. 이번에는 분명히 다른 결과를 주실 것이리라. 이번이 세 번째 항해였기 때문이다. 트리니다드Trinidad 성 삼위일체는 육신으로 온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신학 이론이다. 삼위일체론이 콜럼버스 시대의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로 발전하고 있었다. 보티첼리가 <성 삼위일체Holy Trinity>(1493)를 그렸다. 콜럼버스가 첫 번째 항해를 떠날 때 일이다. 독일 미술의 아버지라는 알브레히트 뒤러도 <성 삼위에 대한 경배>(1511)를 이 무렵에 그렸다. 숫자 3은 신의 전능을 상징했다. 신이 인간사의 일을 완성하는 신비의 숫자이기도 했다. 2차 항해에서 소환되어 끌려오다시피 한 콜럼버스는 낙담하고 있었다. 항해의 결과가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을 건설할 황금을 가져오지 못했다. 일본이나 중국에 당도했다는 확신도 없었다. 향신료의 땅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굳이 성과를 꼽자면 다이노를 잡아 노예로 파는 정도였다. 이사벨라 여왕 부부를 대신해 식민지 정복 사업을 총괄하던 스페인 대주교이자 궁정 자문역인 폰세카가 콜럼버스를 견제했다. 수익에 비해 콜럼버스가 지나치게 많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고, 국왕 부부는 동의했다. 그의 소환에 폰세카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콜럼버스는 짐작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이 고난이 성스러운 3번째 항해의 큰 성공을 위해 하느님이 예비하신 역경일 뿐이라고 믿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일기에 기록했다. 이사야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임을 믿었다. 그는 3이라는 숫자의 신성함에 기대 3차 항해를 지원해 달라고 스페인 국왕 부부를 설득했다. 스페인 왕실로서도 콜럼버스의 항해를 포기할 처지는 아니었다. 1년 전인 1497년에 항로 경쟁국인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는 리스본을 떠났다. 어쩌면 바스쿠 다가마가 벌써 인도에 도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스페인이 대서양 식민지 사업을 멈추면 다른 나라들이 그 결실을 빼앗을 터였다. 이미 콜럼버스가 바다 건너에서 새로운 땅을 찾았다는 소문은 유럽 전체에 널리 퍼졌다. 실제로 영국 왕 헨리 7세는 1496년에 베네치아인 존 캐벗에 영국의 대서양 맞은편 해안을 항해하도록 후원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 삼위일체>(1493)

1498년 5월 30일. 6척의 배가 카디스를 떠났다. 콜럼버스는 2년 만에 자기 식민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왕이 허락한 승선 인원은 남자 300명과 여자 30명. 하지만 좀체 이 숫자를 채울 수 없었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소문만 요란한 잔치요 빈 수레라고 소문이 난 탓이었다. 왕은 살인범 같은 중죄인들까지 사면해 주는 조건으로 배에 태웠다. 그래도 승선자는 226명에 그쳤다. 세척의 배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보급품을 싣고 있었으므로 히스파니올라섬으로 곧장 갔다. 콜럼버스가 탄 세 척의 배는 베네수엘라 앞바다로 향했다. 그가 남쪽으로 항로를 잡은 것은 금 때문이었다. 그때 유럽의 자연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의지하고 있었다. 같은 위도에서는 같은 광물이 나온다는 이론이었다.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서는 금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금은 뜨거운 태양과 습한 열기가 합쳐져 숙성되어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그러니 카리브에서도 적도 아래로 내려가면 많은 금이 산출될 것이라 믿었다. 그에게는 적도를 넘는 남쪽 항로가 이사야의 예언을 실현할 곳이었다. 해류와 해류 사이에는 빈 곳이 있다. 해류도 없는 곳에 바람마저 불지 않으면 배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무풍지대다. 적도를 건너려면 무풍지대를 지나야 한다. 콜럼버스는 그 ‘불타는 바다’에 8일간이나 갇혔다. 포도주는 식초가 되었고 물이 끓어 나무로 만든 물통이 터졌다. 베이컨은 썩었다. 무풍지대에서 그는 신의 이적을 경험했다. 알 수 없는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무풍지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적은 계속되었다. 드디어 땅을 보았다. 땅의 산봉우리가 3열로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삼위일체가 땅 위에서 발현된 장면이었다. 하느님의 은혜가 그를 이 섬으로 인도했다. 이 섬의 이름을 트리니다드Trinidad라고 명명했다. 그는 지금 콜럼버스 해협의 바다에 있었다. 그 해협의 한쪽이 오늘날의 베네수엘라다. 그 한쪽 땅을 또 하나의 섬쯤으로 여겼다.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그는 지금 남아메리카 대륙 땅을 보고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다운로드 (9).jpeg 콜럼버스의 또 한 명의 경쟁자 존 캐벗. 영국의 북해항로를 발견하고 북미 정복 시대를 열었다.
트리니다드와 토바고 섬. 종말론과 삼위일체론에 빠진 콜럼버스가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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