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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이노

6. 다이노

#126. 음력

by 조이진

음력

다이노들은 해가 우주 만물의 조물주라고 믿었다. 해는 신이자 조상이었다. 조물주가 가시바야구아 동굴에서 바위를 만들고, 또 나무를 만든 다음에 새를 만들어 날아가게 하고 마지막으로 햇볕으로 다이노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해는 우주와 생명의 근원이었다. 다이노들은 달은 여자, 해는 남자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달을 보면서 자연의 순환과 농사의 일정을 알아냈다. 그런 다이노들은 달의 변화를 보고 날을 셈했다. 책력은 두 종류였다. 농사 같은 일상에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궤도에 따라 1년을 365일로 나눈 책력을 사용했다. 종교에는 260일로 구성된 책력을 사용했다. 천문학자들은 이 책력을 샛별의 궤적을 관찰해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식민정복자 오비에도는 이렇게 기록했다. “메주maíz는 늘 달이 시작할 때 심었다. 그들은 그래야 한다고 믿었는데, 실제로 그때 씨를 뿌린 메주는 잘 자랐다. 마찬가지로 유가도 꼭 새로 달이 뜰 때 심었다. 늦게 심어도 보름달이 되기 전에는 서둘러 다 심었다.” 새로 뜨는 달은 초승달이다.

달의 여신_과달루페섬.png 산호에 새긴 달의 여신상. 과달루페섬에서 출토되었다. 경주 '신라 천년의 미소' 여인상과 비슷하다.


농부는 아무 때나 씨를 뿌리지 않는다. 씨를 뿌리는 마땅한 때가 있다. 때가 맞아야 잘 자라고 수확량이 많다. 다이노들에는 초승달이 뜰 때가 그때다. 초승달이 떠서 반달이 될 때까지 기간은 1년 중 180일이다. 정복자들이 관찰한 기록에 의하면 다이노는 유가를 60일간이나 심었다. 유가가 주식이니 많은 양의 씨를 심었다. 심기는 남자들이 했고, 여자들이 밭을 가꾸었다. 남자들은 밭을 갈고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농사일을 도맡았다. 여자들은 씨를 심고, 집을 정리하고, 그릇을 빚고 집안일을 했다. 다른 작물들도 달의 모양을 보아 심고 거두는 때를 알았다. 그러므로 달을 볼 줄 아는 것은 중요했다. 오비에도는 메주 심는 요령을 이렇게 적었다. “어린 모를 손가락 세 개나 네 개로 쥐고 무른 땅에 가볍게 눌러 넣어 심는다.” 이앙기가 없던 시절 손으로 논에 볏모를 심던 방법과 똑같다. 물 댄 논에 한 뼘 정도 자란 볏모 두어 가닥을 엄지와 검지, 중지, 약지로 모아 쥐고 중지부터 무른 흙 속으로 지그시 눌러 넣고 모를 꽂으면 모가 심어졌다. 논흙의 물컹함이 꽉 찬 듯 느껴지면 모를 놓아두고 손가락만 쏙 빼냈다. 그 미끈함을 느끼면 발을 옮겨 또 다른 모 몇 포기를 쥐었다. 스페인에서 논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오비에도는 지금 이 모심기하는 요령을 묘사했다. 오비에도의 기록으로 볼 때 다이노들은 볏모 심듯이 메주의 모를 심었다. 지금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여러 지역에서도 논농사를 짓는다. 건기가 되면 피부 검은 카리브 사람들도 울력 나온 농부들이 못줄에 맞춰 줄지어 허리 숙여 한 발씩 뒷걸음 물러서며 볏모를 심는다. 오비에도가 메주 모 심는 일을 관찰했을 때 다이노들은 그렇게 허리 숙여 모를 심었을 것이다.

다이노들은 좀생이 별무리가 깨어나면 씨를 뿌리고 또 곡식을 거두었다.

메주는 초승달이 뜨고, 좀생이별이 새벽 동녘에 뜰 때 심는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하지 무렵이다. 옥수수는 4개월 정도면 다 자란다. 하지만 수확이 늦어지면 금세 딱딱해져 먹기 힘들어진다.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일은 중요했다. 다이노들은 좀생이별이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서쪽 하늘로 내려갈 때를 지켜보았다가 메주를 수확했다. 돌낫을 갈아 메줏대를 벴다. 카리브해의 10월이 끝나가는 때다. 카리브에서는 메주를 2번 심었다. 수확한 다음 곧바로 뜨는 초승달 때인 11월, 12월에 다시 심었다. 그리고 삼사월에 수확했다. 두 번째 수확하는 이때는 해가 진 뒤 좀생이별들이 서쪽 하늘에서 사라질 때를 보고 수확을 시작했다. 그리고 6월이 될 때까지 농부들은 몸을 뉘었다. 초승달이 뜰 때 모를 심는 다이노의 메주 농사는 좀생이별 플레이아데스의 운행과 일정이 같았다. 좀생이별이 아침에 뜨는지, 밤에 뜨는지, 어느 하늘에 뜨고 어느 고갯마루 너머로 지는지에 따라 농사를 시작하고 수확할 때를 알았다. 그러니 좀생이별 플레이아데스는 비와 물과 농사의 별자리였다. 어린 시절 내 할아버지도 꼭두새벽에 장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할아버지가 왜 밖을 내다보는지, 아직 어두운 하늘을 향한 그의 눈이 무엇을 보는지 알지 못했다. 농부인 내 할아버지가 그때 왜 하늘의 별을 헸는지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다이노들은 무엇을 하든지 달과 별을 보고 날을 결정했다. 콜럼버스의 둘째 아들 페르디난드 콜론은 “다이노들은 모든 활동을 할 때 달을 보고 날을 잡는다. 심지어는 기독교도에 대항하여 전투를 치르는 날을 정할 때도 달을 보고 날짜를 잡았다”라고 적었다. 그런 다이노들이 기독교도에게 패배한 뒤로는 달력마저도 양력으로 바꾸어야 했다. 달력이 바뀐다는 것은 농사도 바뀌고 풍습도 바뀌고 민속의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예로 전락했으므로 더는 농사도 짓지 못했다. 금은을 캐는 좁은 우물 같은 땅굴의 입구 사이로 언뜻 좀생이별이 보였다. 그날도 별 밭에서 별이 졌다. 먹이지 못해 배를 곯은 청개구리들이 밤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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