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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이노

6. 다이노

#128. 니다이노

by 조이진

니다이노

다이노 사회는 두 계급으로 이루어졌다. 왕족을 포함한 귀족계급은 니다이노Ni-taíno, 평민계급은 나보리아Na-boria라고 부른다고 스페인인들은 기록했다. 니다이노라는 단어를 처음 기록하고 사용한 사람은 콜럼버스다. 처음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했을 때 구가나가리가 콜럼버스에게 니다이노nitaíno라고 말하며 ‘당신도 지체가 높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콜럼버스는 첫 번째 항해일지에서 니다이노를 “대귀족, 통치자 또는 판사”라고 기록했다. 좀 더 유심히 다이노 사회를 관찰한 라스 카사스는 “기사knight나 공작, 백작 같은 혈연 영주 principal lord”라고 적었다. 또 다른 기록자는 “그들은 가시관보다는 능숙하지 못한 천문관측자”라고도 적었다. 모두 맞는 말이다. 니다이노는 가시관과 친인척 혈연관계로 가시관을 옹위하는 귀족 지배계층이다. 이들이 군장 사회를 공동으로 통치했다. 또 이들은 언제든지 왕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보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침략해 온 주변 세력들과 전쟁을 치르는 주체세력이었다. 다른 가시관이 통치하는 지역과 교역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외교활동도 했다. 가시관 구가나가리가 콜럼버스의 배에 몇 차례 방문한 것도 외교 목적이었다. 다이노 사회는 법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어기는 자는 법에 정한 바에 따라 엄하게 처리되었다. 살인이나 강도로 남을 다치게 한 자는 처형했고, 도둑질 한 자는 노예로 삼았다. 근친상간과 간음은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 다이노 사회는 하늘에 제를 올릴 때 인신을 공양했다. 이때 살인자 같은 범죄자를 인신 제물로 삼았다. 스페인 사람들이 보기로 다이노들은 ‘의회Cortes’를 운영하고 있었다. 니다이노들은 일종의 의회 기구에 참석하여 나랏일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평상시의 나랏일이란 언제 어느 바다에서 어느 물고기를 사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카누를 태워 나보리야들을 보낼 것인지, 어느 시기에 어느 씨앗을 파종할지 같은 것들이었다. 나보리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니다이노들이 책임졌다. 나보리야들을 배곯게 하는 가시관은 자격이 없으므로 탄핵당했다. 그러므로 가시관은 천문을 잘 살펴야 했다.


스페인 침략 초기에는 니다이노들을 중심으로 스페인에 항쟁했지만, 피지배를 받아들인 뒤로는 니다이노들은 다이노 사회를 착취하는 앞잡이가 되었다. 스페인이 금·은광 채굴을 위한 원주민 착취 시스템으로 엔코미엔다를 시행할 때 스페인인들은 다이노 사회의 계급제도를 잘 이용했다. 스페인인들의 부역자가 된 니다이노는 나보리야의 노동을 지휘하고 감시했다. 니다이노에게 복종하는 뿌리 깊은 전통 때문에 나보리야는 죽어가면서도 혹독한 노동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나보리아

니다이노를 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나보리야naborías라고 불렀다. 이들이 다이노 사회에서 생산을 담당했다. 대개는 농사를 지었다. 라스카사스는 나보리아는 “일꾼 또는 니다이노를 돕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오비에도는 “나보리아는 노예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고려와 조선에서도 양인들은 노예가 아니면서도 신역 의무를 지닌 것과 같다. 도둑질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나 전쟁에서 패한 포로들이 나보리야가 되었고, 신분은 세습되었다. 인류학자들은 다이노 마을에서 니다이노의 집은 나보리야들이 사는 마을 공간의 핵이라고 보았다. 다이노 공동체는 니다이노의 집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연계된 사회였다. 니다이노의 집은 니다이노끼리 서로 오가며 친인척과 지배층 간 관계를 유지하는 곳이기도 했고, 나보리아에 대한 지배-피지배의 계급 관계를 잘 드러나는 곳이기도 했다. 나보리아는 니다이노 씨족 공동체에 소속되어 함께 살았다. 니다이노와 같은 집에 살지는 않되 한마을에 살면서 니다이노의 통제를 받았다.

images (31).jpeg 다이노들의 생활상

나보리야들은 남녀와 노소가 서로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여성은 고누고conuco라 부르는 마을 밭에서 남편을 도와 농작물과 약초를 키우고, 집안일을 도맡았다. 유가를 다듬어서 음식을 만들었다. 흙을 빚어 그릇을 구웠다. 질그릇은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다. 무엇이든 짜는 직조 기술이 좋았다. 면실을 짜서 실을 꼬아 마까를 짰다. 베틀 질로 피륙을 짜서 아이들을 입혔다. 여자들은 치마만 입고 가슴을 드러냈다. 치마의 길이와 색상, 그리고 몸을 두르는 방법이 사회 신분과 나이에 따라 달랐다. 대오리를 벗겨내서 엮어 둥근 소쿠리, 네모난 석작을 짰고, 농사에 쓸 여러 농기구로 만들었다. 의자도 만들어 썼다. 이 대바구니의 모양과 엮는 기법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대나무 바구니들과 거의 같다. 남자들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카누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다. 흙을 갈고 과일을 따고 수확한 작물을 땅에 묻어 저장했다. 사냥에 쓸 그물과 창을 만들었고, 산에 올라 약초를 구했다. 그리고 돌과 나무 기둥에 토템을 새겨 장승처럼 마을 입구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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