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카디스의 딸들
카디스의 딸들
서기전 5세기 무렵 페니키아 상인들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이시스도 동정녀였다. 이집트의 동정녀도 죽은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한다는 신의 아들을 낳았다. 동정녀가 낳은 아들 호루스도 뒷날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그래서 페니키아뿐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에게 이시스는 하늘의 여왕이자 별의 어머니이고 또 바다의 어머니로 숭배되었다. 카르타고와 전쟁을 벌일 시기의 로마에서는 이시스 교가 가장 중요한 신앙이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지중해에서는 이시스가 마리아와 같은 캐릭터였다. 서기 2세기 전에 그리스 선원들이 카디스에 ‘딸들’을 데려왔다. 이 소녀들은 먼 항해에 꼭 필요한 선원이었다. 뱃사람들이 이시스 신에게 항해와 만선을 염원하는 제례를 올렸을 때마다 이 소녀들이 춤을 추었고, 노래를 불렀고, 악기를 연주했다. 뱃사람들은 몸이 아름다운 소녀 노예들을 배에 태웠다. 노예 신분이었으므로 밤에는 매춘했다. 이 소녀 노예들이 ‘카디스의 딸들'의 원형이다. 노예의 주인은 악단을 동반했다. 딸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 악단은 나무통에 가죽을 대서 두드려 소리 내는 악기를 두드렸다. 딸들은 조개껍데기를 묶어 흔들어 소리를 내는 악기를 흔들며 노래했다. 방울 달린 딸랑이도 흔들었다. 쪽빛의 에게 바다 물속처럼 투명한 피부를 가진 소녀들은 실오라기로도 육체를 가리지 않았다. 풍만한 엉덩이로 도발하는 공연은 이를 보는 선원들은 물론이요, 여자들끼리도 얼굴을 붉게 했고 욕망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손님을 초대한 카디스의 로마 귀족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딸들의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을 마친 무희는 침대에서 음탕한 몸짓으로 주인의 손님에게 긴 쾌락을 접대했다. 그런 방의 한편에서는 어린 플루트 연주자들이 빠르고 활기찬 멜로디를 연주했다. 부자들이 뛰어난 '카디스의 딸들'을 섭외하고 싶다면 딸들의 주인에게 큰돈을 주어야 했다.
텔레투사Telethusa는 ‘카디스의 딸’ 중의 딸이었다. 로마를 포함해 지중해 전체에서 최고의 연예인이었다. 텔레투사는 주인이 팔았다가 다시 되사들여 애첩으로 삼았을 만큼 미모와 재능이 뛰어났다. 캐스터네츠 소리에 맞춰 외설스러운 동작으로 추는 텔레투사의 춤은 음란 공연의 백미였다. 카디스의 딸 텔레투사가 로마에 온다면 로마가 들썩였고, 시인들이 기록에 남길 정도였다. 지중해의 모든 유행이 시작되는 최고 유흥지 카디스에서 이 딸은 계속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텔레투사의 신곡을 카디스뿐 아니라 로마와 이집트, 티레에서도 금세 사람들이 흥얼거렸다. 카디스 스타일의 음악적 요소 중 중요한 것이 카디스의 시끄러운 소리라는 별칭을 지닌 캐스터네츠다. 텔레투사는 캐스터네츠를 흔들며 훤히 드러낸 엉덩이를 섹스 행위 하듯 흔들었다. 로마의 시인은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의 벨루스 호모bellus homo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꽃미남이 아니라 여장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풀처럼 끈적한 듯 강한 발삼과 계피 향을 진하게 바르고, 몸 파는 여자들처럼 치장하고 낮은 비음으로 소곤대는 남자들 벨루스 호모가 로마 거리처럼 카디스에서도, 세비야에서도 그 모습 그대로 거리에 가득했다고 했다. 그런 스타일의 벨루스 호모들이 뒷날 아바나 거리에도 가득했다. 아바나의 벨루스 호모들이 카디스의 호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피부색이 검다는 것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이 젊은 여자들을 ‘카디스의 창녀들puellae gaditanae’이라고 불렀다. 로마인들은 카디스 무희들을 여러 그림으로 그려두었다. 그림 속 카디스 아가씨들은 나체로 캐스터네츠를 들고 춤추고 있다. 프랑스의 오페라 작곡가 들리브는 이 젊은 창녀들을 소재로 <카디스의 아가씨들>라는 곡을 만들었다. 역사 속 ‘카디스의 딸들’은 말할 수 없이 야한 춤을 추는 댄서이자 가수이자 매춘 노예들이었다. 텔레투사들이었다. 카디스의 딸들이 추었던 춤과 음악이 플라멩코의 뿌리가 되었다.
카디스의 딸들을 묘사한 로마시대 모자이크
+ <Le Filles de Cadix> Leo Delibes의 곡. 남자를 유혹하는 집시 아가씨들을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