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보이게
보이게
콜럼버스를 따라 카리브 원주민을 관찰한 보고서를 남긴 수도사 라몬 파네는 다이노 사회에서 점을 쳐서 앞날을 보는 자를 보이디오boítios라 했다. 다른 스페인 기록자들은 보이게Bohiques 또는 배이게Behiques라고 한다고도 기록했다. 가시관을 가시께로 줄여 부른 스페인 사람들의 언어 습관으로 보면 보이게의 원래 이름은 보위관이었을 것이다. 보이디오는 가시관 다음으로 위상이 높았다. 보이디오 또는 보이게는 마을과 나라의 제사와 의술을 담당하여 가시관을 보위했다. 보이게는 굿을 해 앞날을 보는 무당인 샤먼이기도 했고 또 병든 자를 치료하는 의자healer이기도 했다. 멕시코에서는 굿을 구Cu라고 한다. 오비에도Oviedo는 보이게를 “약초를 다루는 큰 의사”라고 기록했다. “보이게들은 나무와 뿌리와 풀에 대해 지식이 아주 많고, 그런 식물들을 직접 키우고 병에 따라 혼합하여 사람을 치료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신성시했다. 우리가 성인saint을 모시듯이 한다”라고 관찰했다. 이들은 주문을 외워 신과 소통했다. 라스 카사스는 “보이게는 의사이자 심령 치료사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아픈 자의 코에 숨을 불어주기도 하고, 주술적 행동을 해주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라고 적었다. 다이노 사회의 무속 풍습은 카리브와 멕시코,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아주 오랜 전통이었다. 보이게도 지배계층이었으므로 머리에 새의 깃을 꼽았고 큰 꽃을 꽂았다.
다이노들에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했다. 그 두 세계는 늘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이 있는 주위 모든 곳마다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나무나 산, 강 같은 자연환경 속에도 살아있는 영혼이 있었다. 다이노들은 저 먼 하늘에 다음 세상이 있다고 여겼고, 염라대왕에 의해 선하게 살았다고 판단된 사람은 영원히 편안하게 쉬며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서 선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이게는 그런 종교 영역을 담당했다. 그리고 가시관은 그런 보이게를 가시관의 신성을 강화하여 통치에 활용했다. 라몬 파네가 보이게의 무속 행위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보이게는 약초를 달인 물을 환자에게 먹였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환자의 환부를 입으로 빨아냈다. 그런 행위로 환자의 몸을 차지한 귀신을 빨아낸다고 했다. 보이게도 코해바 제례에 참여하는 중요 일원이었다.”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디난드는 “병을 치료할 때면 보이게가 먼저 음식을 금하고, 일부러 토하여 속을 비운 다음 병자의 얼굴을 만졌다. 그 접촉으로 병자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귀신이 보이게에 넘어왔다고 여겼다. 이제 보이게가 귀신 들렸으니 다시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코해바라는 환각 가루를 코로 흡입했다. 보이게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데, 보이게 몸을 차지한 귀신이 하는 말이다.”라고 기록했다. 보이게의 코해바 의식은 가시관이 재미에게 제를 올려 조상신으로부터 미래를 계시받아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제례에서도 의식의 일부로 치러졌다. 전쟁을 시작하는 날을 정하는 중요한 의사결정도 보이게가 코해바를 흡입해 조상신이 계시한 좋은 날을 받아 결정했다. 전쟁할지 말지, 풍년일지 흉년일지 같은 것을 조상신에게 묻고 길흉을 점치던 동북아시아의 오랜 전통과도 비슷했다.
다이노들은 귀신이 사람의 몸을 차지해서 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보이게가 방울 흔들어 쩔렁쩔렁 소리 내는 무속신앙을 믿었다. 신들린 보이게가 중얼거리는 말과 노래와 춤은 마음이 상해 화난 귀신을 위로하고 화를 누그러뜨려 몸에서 나가도록 유도하는 의식이었다. 귀신이 몸 밖으로 나가야 병은 치료된다고 믿었다. 그런 샤먼 의식을 멕시코에서는 구cu 또는 굿cuz라고 한다. 다이노들도 굿을 할 때 긴 흰 천을 사용한다. 긴 흰 천은 보이게와 신을 이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다. 인류학자들은 긴 천을 흔들며 춤을 추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코르돈 댄스cordón dance라고 한다. 보이게들은 코르돈 댄스를 추면서 마라카스 소리에 맞춰 노래했다. 보이게는 이런 의식을 함으로써 환자의 몸을 차지한 귀신과 대화했고 귀신의 말을 듣고 왜 환자가 아프게 되었는지 원인을 알아냈다. 귀신이 왜 화가 났는지를 알았으니 어떻게 해야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치료법이었다. 병자는 굿을 해 귀신과 교감해야 했다. 죽고 사는 운명은 보이게가 귀신을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려있었다. 이런 이유로 보이게는 의사이기도 하고 성직자이기도 했다. 보이게는 또 례도 행사 때 코르돈 댄스를 추며 노래했다. 노래는 위대한 조상들의 역사에 대한 노래이기도 했고, 조상신과 소통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그런 노래를 통해서 젊은이들에게 다이노 민족의 역사를 전승했다. 보이게는 산 자를 대신해 죽은 자와 대화하게 하고, 조상신과 소통했고, 미래를 예언했다. 그러므로 다이노는 보이게를 현인이자 영적인 존재로 받들었다.
가시관은 태양을 상징했다. 반면 보이게는 달과 물을 상징했다. 다이노 신화에 따르면 보이게는 물의 어머니 신인 “큰 뱀Great Serpent”을 상징했다. 물은 곡식과 약초를 키워내므로 “큰 뱀”은 농업 생산의 재미이기도 했다. 스페인 기록자들은 ‘큰 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용이라는 큰 뱀을 토템으로 믿었다. 다이노 사회의 시각화된 예술품 중에서는 용의 모습을 한 토템 상징물은 아주 많다. 카리브해에서는 이구아나가 파충류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었고, 뱀이나 용과 비슷했다. 그래서 이구아나 형상을 한 재미를 이구아나보이나Iguanaboína라고 다이노들은 불렀다. 이 “큰 뱀” 또는 이구아나보이나는 유카탄반도의 마야 문명 유적지인 치첸이트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적지 피라미드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 토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