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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이노

6. 다이노

#139. 마지막 례도

by 조이진

마지막 춤

콜럼버스의 동생 바르톨로뮤 콜론이 히스파니올라섬을 정복하는 동안 섬 동부 저라가를 침략했을 때 일이다. 그곳의 가시관인 비치오Behechio가 스페인 정복군과 협상을 마친 후 30여 명의 아내에게 례도를 하게 했다. 그녀들이 흰옷을 차려입고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기독교인들을 기쁘게 하더니 스페인 남자들 앞에서 엎드려 무릎을 꿇더라고 바르톨로뮤가 기록했다. 예를 다해 의식한 후 엎드려 절하여 행사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정복자 오비에도도 례도를 기록했다. 가시관 비치오가 스페인군에게 살해된 후 여자 가시관이 된 아나가온아Anacaona가 300여 명의 처녀로 례도를 치르고 스페인군을 초대해 술과 음식으로 잔치를 열어주었다. 잔치를 마치자 스페인군은 300여 처녀를 포함한 수백 명의 다이노들을 아나가온아의 가내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모두 태워 죽였다. 그런 다음 아나가온아를 수갑과 쇠사슬로 두 팔을 묶고 나무에 걸어 산채로 장작불에 태웠다. 라스 카사스의 기록도 있다. 가시관 과리오네새Guarionex가 스페인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웃 가시관인 마요바네새Mayobanex에게 자신의 국읍을 넘겨주면서 례도 의식을 치렀다. 이 의식은 두 가문의 역사와 신화를 연결하여 힘을 서로 통합하는 의미였다고 했다. 과리오네새도 마요바네새도 스페인 군사와 맞서 싸워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이들은 통합하여 전투에 임하기로 했고, 그 통합의 의식으로 례도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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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노 민족 역사상 가장 슬픈 례도는 쿠바 최후의 가시관 해태이가 주관한 례도다. 기독교인들이 정복지를 넓혀가며 동시에 다이노들을 절멸해갈 때 히스파니올라의 가시관이었던 해태이는 바라코아로 건너와 쿠바에서 가장 길고 높은 산줄기 시에라 마에스트라산맥을 근거로 무장 항쟁을 이어갔다. 히스파니올라에서 바라코아까지는 90km. 카누로 한나절이면 닿는 거리다. 다이노들이 바라코아라 부르던 땅을 스페인 사령관 벨라스케스는 벌써 성모 마리아 타운이라고 불렀다. 그때 히스파니올라에서는 수많은 다이노들이 광산에서 노예가 되어 급속하게 죽어가고 있었고, 푸에르토리코에서도 스페인 침략군과의 전투에서 계속해서 지고 있다는 소식은 이곳 다이노 사이에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울분과 두려움이 두꺼운 비구름 되어 무겁게 섬을 짓눌렀다. 이제 최후의 일전을 앞둔 해태이는 수천 다이노들을 모아 례도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또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오고 있소이다. 저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것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소. 저들이 아이티에서 한 짓을 보면 여기서도 똑같은 짓을 할 것이 분명하오. 저들의 천성이 잔인하고, 본래 악마가 아니라면,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오. 기독교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아오? 저들이 우리를 죽이는 이유는 그들의 신 때문이오. 그자들이 숭배하는 신, 우리에게 숭배하라고 강요하는 그 신 말이오. 우리를 복종시키고 또 몰살하려는 것은 그 신 때문이오. 기독교인들의 신은 바로, 이 바구니 안에 들어 있소. 기독교인들은 이 바구니 속에 담긴 금이라는 신을 숭배하오. 금이 곧 기독교인들의 신이란 말이오. 그러니 바구니에 사는 저들의 신을 위해 우리가 례도를 해줍시다. 그들의 신을 우리가 기쁘게 해 줍시다. 그러면 예수라는 그들의 신이 기독교인들에게 이제 다이노들을 그만 해치라 할 것이오.” 그들은 황금과 보석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모셔놓고 모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었다. 례도를 마친 해태이가 이렇게 말했다. “여길 보시오. 우리가 이것을 지키고자 하면 그들은 이것을 빼앗기 위해 우리를 죽일 것이오. 그자들을 없애려면 이 금을 없애야 하오. 그러니 이것들을 모두 강에 던져버립시다.” 다이노들이 바구니에든 황금을 유무리Yumuri 강에 쏟아버렸다.

콜럼버스가 상륙해 식민지 수도로 삼은 바라코아에 세워진 해태이 동상. 그의 창은 맞은 편 콜럼버스를 겨누고 있다.

해태이와 다이노들은 스페인 군인들이 진격하는 곳마다 급습하고 항쟁을 이어갔다. 그는 최후의 전투에서 생포되었다. 싸운 다이노들은 스페인인들의 긴 창에 찔려 죽거나 칼에 베였다. 스페인인들은 붙잡힌 다이노는 말에 사지가 묶어 몸을 찢었다. 종교재판에서 하던 대로 했다. 쇠사슬 수갑에 묶인 해태이가 장작더미 위에 세워졌다. 기독교 신부가 해태이에게 기독교 신과 신앙에 대해 짧은 설교를 스페인어로 늘어놓았다. 지금이라도 해태이가 기독교 신을 믿는다고 하면 천국에 가고, 그곳에서 영광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문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 했다. 기독교인들도 천국이라는 곳에 가는가 하고 해태이가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는 그중에서도 좋은 자만 뽑혀서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해태이 가시관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천국이라는 곳에 가지 않겠다. 차라리 지옥이라는 곳으로 가겠다. 기독교인들이 있는 천국보다는 기독교인들이 없는 지옥이라는 곳이 더 나을 것이고, 너희처럼 잔인한 악마들을 저승에서라도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쿠바 땅에서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정치 연설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부끄러움을 깨쳤을 리 없다. 해태이를 불태웠고, 저항한 다이노들을 모두 살해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라스 카사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인디오들에게 가서 얻은 하느님과 신앙의 명예와 명성이다.”

images (34).jpeg 바라코아시에 있는 해태이 상. 쿠바인들은 유럽 식민제국주의에 투쟁한 최초의 영웅으로 추앙한다.

바라코아에는 유무리 강이 흐른다. 유무리 강가에는 아몬드꽃이 많이 피었다. 아몬드꽃은 벚꽃처럼 별 무리처럼 피었다. 침략자들의 노예로 사느니 수백 명의 다이노들이 유무리 강 절벽에서 하얀 아몬드 꽃잎처럼 뛰어내렸다. 바라코아에는 해태이 동상이 서로 다른 두 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래도 두 동상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저 맞은편 바닷가 요새에 앉은 콜럼버스 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 요새는 대서양을 막 건너온 스페인 침략군이 카리브와 아메리카에 처음으로 건설한 요새다. 롬바르드 대포 여남은 기가 그대로 있다. 동상 하나는 콜럼버스가 처음 세운 십자가 진품을 보관 중인 가톨릭교회당 앞뜰에 서 있다. 콜럼버스가 바라코아에 도착해 처음 예배하고 십자가를 세웠던 언덕을 등지고 저 멀리 마주한 콜럼버스 동상을 향하고 있다. 동상 해태이는 콜럼버스와 스페인 요새를 향해 금세 창을 던질 듯 겨누고 있고 얼굴은 분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노려보고 있다. 쿠바는 해태이를 반제국주의 독립투쟁을 처음 시작한 영웅이자 외세에 굴종하지 않는 쿠바 역사를 상징하는 조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스페인인들이 해태이를 불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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