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떼끼나
떼끼나
다이노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곧바로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 공간에서 한동안 떠돈다고 믿었다. 구천이고 황천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혼백을 불러내 원을 풀어주어야 영원한 시간의 공간인 저승으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죽은 자가 살았을 때 지녔던 재미를 모셔놓고 의식을 했다. 재미가 죽은 자를 대신하는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인류학자들은 ‘구Cu’를 례도 댄스의 하나라고도하고 따로 코르돈Cordon 댄스라고도 부른다. 코르돈은 긴 끈이라는 뜻이다. 코르돈 댄스는 하얀 천으로 만든 너른 긴 끈을 새 날개 펴듯 펄럭펄럭 추는 춤이다. 인류학자들은 다이노 신화와 전통, 그리고 례도가 500년 전 다이노가 진멸될 때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카리브해 여러 지역에서 례도는 코르돈이라는 춤과 종교의식에 남아 여전히 행해지는 풍습으로 발견되고 있다. 코르돈은 기저귀와 비슷한 길이와 폭으로 희고 긴 무명천이다. 펼치면 폭이 되고, 말면 끈이 된다. 굿을 하는 보이게가 춤을 추며 흰 천을 끈으로 꼬았다 던져 펄럭 펼치기도 하고 말기도 한다. 카리브해 사람들은 보이게가 코르돈 춤을 추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풀어주어야 넋이 저승으로 떠난다고 여겼다. 다이노들은 흰 무명 코르돈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혼백을 불러내 한과 서러움을 달래주어 저승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안주하게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코르돈 댄스를 코르돈 강신술Cordon Spiritism이라고 부른다. 코르돈 댄스는 크게 4단계로 전개되는데 그 구성과 흐름이 동북아시아 전통의 씻김굿과 거의 판박이다. 굿에 대한 개념도 의식도, 4단계로 진행되는 순서도 씻김굿과 차이가 없다. 코르돈 댄스도 례도와 공차기 등과 마찬가지로 마을 한가운데 직사각형 광장의 빈 땅 밭batú에서 치러졌다. 광장에는 큰 나무가 있고 하얀 천을 여럿 달아 장식했다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이 있다. 코르돈 댄스는 때에 따라 깊은 산속에서도, 마을 뒷산 자락에서도 했다.
마이애미 대학의 조지 모레혼Jorge Morejón은 코르돈 댄스를 형태가 없는 영적 존재와 나누는 독특한 주문이자 대화라고 했다. 례도에서 다이노들은 둥글게 줄지어 서서 손을 잡고 뛰며 춤을 추고 주문을 외며 노래했다. 손을 잡고 원을 만드는 동작이 우주의 기운을 하나로 모아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춤추었다. 그것이 지구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방향이기도 하고 허리케인의 바람이 도는 방향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례도 때 부르는 노래는 조상의 신령을 모셔 오는 축문이었다. 그들은 깨끗한 물을 떠서 례도 의식을 치르는 곳 앞에 모셔두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에 길은 정결한 한 그릇 물은 우주의 기운과 연결해주는 자기화된 영험한 힘을 지녔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평소에도 그런 물을 떠서 집 밖 여기저기 어디든 두었다. 례도를 집전하는 보이게는 물을 뿜어 혼령과 자기 몸을 연결하여 신이 내리는 매개로 삼았다. 례도를 통해 수천 년 다이노들의 의식 속에 있는 영적 존재들을 불러내 서로 대화했다. 이런 연결과 소통으로 보이게는 병든 자를 치료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조상신의 지혜를 들었다. 쿠바의 인류학자 페르난도 오르티스 Fernando Ortiz는 사멸하지 않는 혼령과 나누는 신비로운 환희를 체험하는 종교적 믿음이 코르돈 댄스라고 했다. 그러면서 “쿠바 다이노들은 죽은 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혼백을 저승으로 떠나보내기 위해 춤을 추었다”라고 했다. 다이노들은 육신을 혼백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는 경계가 있는데 보이게가 그 경계에 있는 존재고 보이게의 코르돈 댄스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접하여 함께 있는 시공간이기도 했다. 스페인 기록자들은 보이게를 “제례를 주관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는 주술사”라고 했다. 보이게는 대개 남자였다고 했다. 조수가 마요우아칸이라는 통나무 드럼을 두드리는 사이, 보이게는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식물을 씹어 삼킨 다음 유가를 발효하여 빚은 술을 마셔서 조상신 또는 죽은 자의 넋의 내림을 받아들였다. 신이 지피면 신대를 잡은 손과 팔이 떨렸다. 흥분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엑스터시의 상태에 이르렀다. 미국 인류학자들은 혼백과 무당이 교감하고 대화하는 이 빙의 상태를 생체 에너지를 서로 교환bioenergetic exchange하고 있는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에너지 교환 또는 신바람은 초인적인 힘, 무서운 신비로운 힘으로도 나타난다. 조상신의 영혼이 보이게에 옮아 붙어 몸을 차지하면 믿을 수 없게도 낮고 괴이한 어투로 말도 했다. 이 상태를 인류학자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이용해서 혼백spirit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소유possession’ 상태라고 한다. 신령이 보이게의 육신을 소유하여 그 몸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인간은 ‘신들린obsession’ 상태에 놓였다고 설명한다. 신령에게 점유 당한 육신이 옴짝달싹 못 하게 얽매여 있거나 통어하는 상태를 말한다. 조상신의 대리자이자 환상과 현실 사이의 연결자가 된 보이게를 이용해서 혼백이 말하고 환자를 치료했다. 병이란 환자가 평소 잘못한 일로 생기는 벌이므로 화가 난 혼령의 원한을 풀어야 병이 낫는다고 여겼다. 가령 죽은 부모를 섬기는 일을 소홀히 했다면 부모 혼백에게 혼이 나야 했다. 그런 혼내는 역할을 떼끼나tequina라고 했다고 스페인 기록자들은 적었다. 신 내린 보이게가 떼끼나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