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베리아

1. 이베리아

#011 고트란디아

by 조이진

고트란디아

로마의 주문대로 반달족을 쫓아낸 고트족은 계약대로 남프랑스 툴루즈 일대를 보수로 받아 정착했다. 이 땅은 바스크와 같은 민족인 옥족d'oc이 살던 옥시딴occitan 또는 옥시타니아였다. 로마가 더는 패권자가 아님을 안 고트는 피레네 북녘 옥족의 땅에 아예 서고트 왕국을 세웠고 다시 피레네산맥을 남하해 300년 동안 이베리아의 주인이 되었다.

고튼족이 세운 엑상프랑스 카르카손 성/중앙일보


피레네를 가운데 두고 하나의 왕국이 된 이베리아에 오가기 위해 옥시타니아 사람들이 피레네를 오르내렸다. 이베리아는 그 무렵 유럽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었으니 상인도 많았다. 상인들은 돈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었고 돈은 피레네 산 아래에 도시들을 만들었다. 피레네 남쪽 아래턱에 바다를 낀 두 도시가 성장했다. 지중해 쪽 바르셀로나와 대서양 쪽 빌바오가 생겨났다. 두 도시로 상인과 물자가 다니며 피레네 북쪽 툴루즈에서 이베리아로 넘어오는 길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은 툴루즈에서 시작한다. 로마에게 야만족이라 무시당한 고트가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길을 이베리아에서 새로 만들었다. 고트도 이베리아 땅에 그 이름을 깊게 새겼다. 고트가 지배한 땅이니 고트의 땅인 고트란디아Gothlandia이었고, 고트란디아는 세월 흘러 카탈루냐Cataluña가 되었다. 바르셀로나가 있는 지역이 카탈루냐다. 말은 민족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은 같은 민족이다. 카탈루냐의 말에는 옥족의 말이 많이 섞여 있다. 프랑스 옥시타니아 자치 정부처럼 카탈루냐 자치 정부도 옥족의 언어 랑드옥langue d'oc을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학교에서 교육한다. 옥시타니아와 카탈루냐는 둘 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독립을 주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그들은 본디 서로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바울. 기독교 교파간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이때부터 유대인에 이단, 더러운 피라는 이미지가 씌어다.


이단

고트는 고딕 건축 양식을 남긴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고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치명적인 흔적도 남겼다. 당시 지중해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로마처럼 되고 싶었던 고트가 야만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는 로마의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로마처럼 법을 만들어 생각을 담아야 했다. 고트의 법에서 이단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타났다. 고트의 법에서 베드로가 세운 로마가톨릭과 다른 교리나 다른 신을 믿는 신앙은 무엇이든 다 이단이었다. 처음에는 다신교 종교가 이단이었다. 그때 페니키아와 이집트, 지중해 일대는 다신교 신앙이 대부분이었으니 이런 신앙이 이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7세기 무렵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우상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예수가 살았을 때는 기독교인들도 스스로 유대인으로 여겼고 기독교도 유대교에서 분파한 한 작은 지파라고 생각했다. 다만 예수라는 이름의 메시아가 언젠가 다시 온다는 믿음은 전통적인 유대교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초대 교황으로 추측되는 베드로도 그랬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도 그랬다. 이때까지는 예수의 말처럼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서로 다름을 관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울이었다. 베드로나 야고보와 생각이 다른 바울은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던 기독교를 유대 기독교라 규정하고 단절을 주장했다. 그리고 유대교 전통을 거부한 자신의 기독교를 이방 기독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스스로 이방 기독교 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유대교의 지파가 아니라 유대교와 대립하고 경쟁하는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 안에서 교파 간 첫 주도권 다툼에서 바울이 야고보를 이겼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이자 종갓집이었지만 예루살렘 기독교 또는 유대 기독교를 이끌던 베드로 종파마저도 바울의 종파에 패배했다. 승리한 바울은 패배한 예수의 사도들을 향해 예수의 복음이 아닌 유대의 복음을 전하는 거짓 형제라고 비난했다. 반대로 패배한 유대 기독교와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유대교 전통을 파괴하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예수가 살아있을 때 그들은 하나였지만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자마자 남은 자들은 분열하고 증오했다. 주도권을 잡은 바울 기독교가 유대인에 더러운 피, 이단, 사탄, 악마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바울의 로마가톨릭이 유일신을 믿지 않는 유대를 이단으로 했으므로 로마를 모방한 고트는 우상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일신 야훼를 믿는 유대인들을 이단의 그물에 넣어 가혹하게 탄압했다. 유대인을 미워하는 예수 기독교 역사가 이베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로마에서 고난 받았던 기독교가 이제는 다른 종교를 핍박하는 세속의 힘으로 변했다. 고트의 이베리아에서 가장 먼저 이단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수천 년 동안 제의에 쓰여 온 주술이 적힌 책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형했다. 제의와 주술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짓은 이단 마귀들의 짓이었으므로 엄하게 금하고 벌했다. 이때부터 유럽은 오랜 세월 동안 춤을 추지 못했다.


이베리아에서 바울의 기독교는 강요되었다. 페니키아가 이베리아에 들어왔을 때부터 노예로 따라 들어와 살아왔지만 이제는 이단이 된 유대교도들은 기독교인들과는 혼인할 수도 없었다. 유대인이 기독교도와 혼인하면 기독교도의 혼을 사탄 마귀가 차지하고 이단의 피를 섞어 낳은 자식 또한 이단이므로 고트의 법은 이단을 태어나게 할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대교는 고트법을 어긴 이단 종교이므로 그들을 강제로 개종하라는 고트 왕의 칙령도 나왔다. 고트는 예수의 이름으로 유대교도를 처형하거나 다시 노예로 삼았다. 유럽에 몇 년에 걸친 대기근이 엄습했고 왕들은 인구 수를 줄여야 했다.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고트족의 생각이 담긴 법을 모방해 유대교도를 굶기고 학살했다. 전염병이 돌 때도 그랬다. 이는 중세 동안 내내 거듭되었다. 기독교 신에게 봉헌할 고딕 건축 양식을 남겼던 고트족은 잔인한 기독교 정신도 오랜 유산으로 남겼다. 로마가 되기 위해 받아들인 고트의 과격한 기독교 신앙은 종교재판 시대를 거쳐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똑같은 일을 자행했다. 복음 전파의 영적 사명은 식민제국주의라는 세속의 욕망과 맞물려 인류 잔혹사에 가장 중요한 생각의 축이 되었다.

이시도르 세비야 대주교. 그가 있어 음악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무렵 7세기. 세비야 대주교인 이시돌Isidore은 매우 학식이 풍부한 학자이자 음악이론가였다. 역사가들은 소크라테스부터 이시돌까지를 고대 시대의 학자로 구분한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이시돌의 영향으로 고트 시대의 이베리아에서는 기도할 때만이라도 노래를 부르는 일이 허락되었다. 그래서 이때 불렀던 노래들을 고트 찬송이라 한다. 아주 지루한 단선율인지라 음악이라 할 수 있나 싶기는 해도 실개천처럼 이베리아에서 다시 노래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절집의 중이 염불하듯 중얼거리는 단조로운 선율에 악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성경 시어를 낮은 소리 내어 읽는 듯 읊조렸다. 영어의 찬트chant는 그런 노래다. 그 시대 이베리아에서 음악이라고는 단선율의 고트 찬트뿐이었다. 기독교 찬송 말고는 노래를 부르지 못했던 시대. 중세 암흑의 특징이다. 인간이 노래 부르고 싶을 때 노래 부를 수 없고, 춤 추고 싶을 때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암흑의 세상이다. 그런 시대가 암흑의 시대다.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할 신은 인간을 억압했다. 중세 유럽은 그런 암흑 시대를 오래 겪었다.


+ 제주 성 이시돌 목장은 세비야 대주교 이시돌의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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